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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에 지나간 내 사랑이 남아 있다. 흔적은 고통을 안긴다. 바람이 휑하니 지나간다. 참혹한 기억, 후회, 죄책감.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자꾸 현재로 호명된다. 망설임에 망설임에 망설임은 끝이 없다. 다시 종이를 앞에 두고 쓰려 한다. 구겨진 종이가 책상 옆에 쌓인다. 이제 문을 잠가야 할 시간. 내 사랑이 갇힌 빈집을 두고 나는 떠나야 한다.
3월 7일은 기형도 30주기다. 심야 극장에서 차가운 의자에 갇혀 홀연히 떠난 기형도. 시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떠난 시인은 다시 쓰지 않는데 남겨진 이들은 시인을 옆에 앉히고 흰 종이를 내민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유년시절. 누이의 죽음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 여린 감수성은 상처입은 비둘기가 되어 눈물로 시를 썼다. 가슴을 울리는 시인 기형도. 그는 갔지만 시인의 숨결은 나에게 온기가 되어 위로한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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