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시동생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남편은 우리 언니에게 '처형'이라 불러요.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지난해 결혼한 직장인 정모(29·여)씨는 가족 간의 호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씨에겐 12살 아래인 시동생이 있다. 아직 고등학생이다.
정씨는 "결혼 전엔 저는 'OO야'라고 이름을 불렀고, 시동생은 제게 '언니'라고 했다. 자매처럼 편하고 친하게 지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결혼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시어머니가 정씨에게 '이제 결혼했으니 OO이(시동생) 이름 대신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당부해서다.
정씨는 "나와 동갑내기인 남편은 2살 위인 언니에게 '처형'이라 낮춰 부르는데 왜 나는 어린 시동생을 존대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어색하다"라고 털어놨다. 가족 호칭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자 정부가 대안을 만들었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호칭 양성평등을 담은 2019년 건강가정 기본계획(2016~2020) 시행 계획을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2012년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 언어 예절' 은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로, 아내 동생은 '처남, 처제'로 부르도록 규정했다.
남편 쪽의 호칭만 존칭이다. 이렇게 관습처럼 써오던 가족 간 호칭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가부는 지난해부터 국립국어원·국민권익위원회와 가족 호칭 개선을 협의해왔다.
국립국어원은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정책'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가족호칭 정비안'을 마련했다. 남편·아내 양가의 비대칭적 호칭 체계를 대칭적으로 정비하고 배우자의 손아래 동기에 대한 차별적 호칭을 정비하는 방안을 내놨다.
국립국어원의 정비안에 따르면 부모는 양가 구분 없이 '아버님, 어머님'으로 통일한다. 또 친밀하게 부를 경우 양가 부모 구분 없이 '님'을 생략하고 '아버지, 어머니'로 부를 수 있다. 다만 '장인어른, 장모님' 등 기존 호칭도 유지한다.
지금은 시부모는 '아버님' '어머님·어머니' 로 부르고, 처부모는 '장인어른, 아버님' '장모님, 어머님'으로 부른다. 시댁-처가 명칭도 바뀐다. 남편의 집만 높여 부른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시댁-처가댁 또는 시가-처가 등 대칭이 되도록 바꾸는 방안을 제시됐다.
배우자의 손아래 동기는 기존에는 남편 쪽은 '도련님, 아가씨', 아내 쪽은 '처남, 처제'로 불렀지만 앞으로는 'oo(이름) 씨, 동생(님)' 등으로 부른다. 국어원은 이와 함께 '처남님, 처제님'도 대안으로 제안했다.
연구를 진행한 박철우 안양대 국문학과 교수는 "국가가 주도로 어떤 호칭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선택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열어두면 자연스러운 호칭이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숙자 여가부 가족정책과장은 "공청회·토론회 등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늦어도 5월 중 개선 권고안을 발표하겠다"라고 말했다. = 긴 뉴스지만 이를 모두 소개한 건 다 까닭이 발동한 때문이다.
필자는 어제 광양에 다녀왔다. 서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순천역에 내리니 사위가 차를 가지고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탑승하여 광양까지 간 뒤 사위의 외할머니 상(喪)이 치러지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고인께 절을 한 뒤 사돈어르신과 일가친척들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을 잃으신 아픈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라는 필자의 말에 안사돈께서는 "손녀 얼굴을 그렇게나 보고 싶어 하셨는데 이루지 못 하고 돌아가셨어요"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지난 1월에 출산한 필자의 외손녀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덩달아 슬픔이 솟기에 제어할 요량으로 애먼 술만 들이켰다. 바깥사돈께서 안 계시기에(오래 전 작고하셨음) 안사돈께서는 외아들 하나만을 보며 이 풍진 세상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셨다.
그 아들을 누구나 선망하는 서울대까지 보내느라 고생하신 지난날은 이미 딸을 통하여 듣고 있는 터였다. 하여 필자의 '친정 어머니'를 여읜 안사돈을 향한 위로는 그 누구보다 진중하고 무게까지 무거웠음은 물론이었다.
사위를 애지중지로 키워주신 외할머니…‥. 하지만 사위의 회사에선 단지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휴가는커녕 장례용품의 그 어떤 것도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순간 부아가 치솟지 않을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손자(손녀)의 양육에 더 적극적인 것이 엄연한 현실 아니던가! 이에 대한 고찰(考察)이 2018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외할머니가 키워주셨는데… 친할머니 발인만 지키라고요?"' 기사에 드러나 있다.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2> 어느 대기업 신입사원의 눈물'이 이의 증명이다. 이 또한 잠시 살펴본다.
=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 손에 자라신 분들 많으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올해 31세인 전 네 살 때부터 14세 때까지 10년을 대구 외할머니 댁에서 살았습니다. 외할머니는 '엄마'였습니다.
수저통을 두고 학교에 간 저를 위해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교문 앞까지 달려오시던 모습, 외할머니표 간식인 조청 찍은 찐 떡을 제 입에 넣어주시며 환히 웃으시던 모습…. 제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모든 추억엔 늘 외할머니가 계십니다. 군대에 갔을 때도 여자 친구에게 전화할 카드를 조금씩 아껴 매주 할머니께 전화했죠. 엄마보다 외할머니가 더 애틋한 존재였으니까요. 지난해 취업 삼수 끝에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을 때 외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누구보다 기뻐하셨습니다.
"아이고 우리 민석이, 맘고생 많았지!" 전 외할머니께 효도할 수 있게 해준 회사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마음이 한순간에 푹 내려앉더군요. 회사가 '외조부모상은 상으로 치지 않는다'며 상조휴가를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친조부모상에는 유급휴가 3일에 화환과 장례용품, 상조 인력과 조의금이 지원되지만 외할머니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친가는 큰아버지, 큰어머니 장례에조차 유급휴가가 나온다던데 외조부모 장례는 가볼 수조차 없다니 대체 말이 되나요. 전 간신히 이틀의 연차를 내 장례식장에 갔지만, 셋째 날 업무 때문에 복귀하란 연락을 받고 발인도 보지 못한 채 출근해야 했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일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후략)" =
여기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의 장례 관련 법은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되었다. 외할머니는 내 어머니를 낳아주신 어머니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외가(外家)라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차별을 해서야 쓰겠는가?
이어지는 동아일보의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둔 직장맘 윤지영(가명·39) 씨는 "아이를 낳고 시댁에 육아 도움을 요청했더니 '육아는 네 몫이니 친정 부모에게 여쭤봐라'라고 말하더라"며 "시부모님이 늘 '우리 새끼 승준이(가명)'라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상 승준이를 지금까지 키운 건 친정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외가를 더 가까운 가족으로 느끼는 한국 사회의 문화가 생긴 지 오래지만 기업들의 상조 정책은 여전히 친가 위주를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적처럼 "(지금처럼) 기업들이 친가와 외가를 차별하는 건 친족 제도의 잔재를 그대로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된 만큼 기업들의 문화적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외손녀 사진을 들여다보는 아내가 바로 그 방증이다. 새삼 움트는 분노가 떠오른다.
몇 년 전 숙모님께서 별세하셨을 때도 회사에선 단 하루의 휴가조차 주지 않았다. '숙모님은 가족이 아니다'는 해석으로 읽혀진 필자는 그래서 얼마나 분노의 눈물과 홧술을 억수로 마셨는지 모른다. 잘못된 법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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