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관음증과 노출증 충족수단으로 사이버 세상이 가장 적합하다는 분석이 있어 재미있게 읽은 일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콘텐츠 제공자는 정보제공으로 노출증을 충족시키고, 그를 바라보며 즐기는 사람은 관음증을 충족시키지요. 사이버 상에서도 지나치면 병으로 보는 것 같아요. 마구 늘어놓는 것을 도배라고 합니다. 한편으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SNS를 들여다보고 있지요. 중독으로 봅니다. SNS를 '잉여소통의 창구', '자기고백의 과잉'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 오버셰어overshare라고도 합니다.
오버셰어의 유형도 각양각색이라며 분석한 자료가 있더군요.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만큼 다양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행태와 다르지 않지요. 다양한 군상을 쉽게 많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좋아요'나 댓글로 응원해 주는 응원형, 2) 바라만 보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눈팅형, 3) 사사건건 시비 거는 싸움닭형, 4) 유익하고 좋은 정보라며 마구 제공하는 정보형, 5) 자랑을 한없이 늘어놓거나 과대포장 하는 자랑형, 6) 사업 목적이나 자신의 위상 제고를 위한 홍보형, 7) 개인의 감정을 거르지 않고 토로하는 징징형, 8) 불만을 해소하는 불만형, 9) 위로받고 싶어 하는 우울형, 10) 소소한 일과를 전하는 일기형 등입니다. 물론, 지나침이 없는 경우가 더 많지요.
지나침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함께 활동하는 모임이나 관련 SNS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많이 봅니다. 취향이 아니다, 얄밉다, 기분 나쁘다 등 이유도 다양합니다. 갈수록 정보의 바다는 넓어지는데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겠지요. SNS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차피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지나치거나 보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이 먼저 일 것입니다. 상대적 위압감이나 박탈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어디서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지요. 잘 할 수 있는 일, 해서 즐거운 일을 하면 되겠지요.
사이버 상에도 충분히 자정기능이 있다 생각합니다. 한 가지, 예의에 대해서는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의는 마땅히 지켜야할 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뜻하지요. 상호 존중으로 유쾌한 관계형성을 도와줍니다. 상대를 보지 않고 하는 일이라 그럴까요? 예의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말과 달리 기록으로 남는 일이라 더 엄중함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욕설을 마구하는 경우도 봅니다. 선정성, 폭력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를 위해 그런다는데 주류가 될 수 없음은 확실합니다. 인격모독이나 사생활 침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유 없는 비난이나 비하도 멀리해야 합니다. 알량한 지식으로 지나친 편견, 침소봉대(針小棒大),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나아가 거짓말이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커다란 죄악입니다. 방송활동이라 자처하는 경우는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상대가 있을 때는 SNS를 삼가야 좋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SNS에 열중하는 사람을 봅니다. 종일 매달려 있는 사례도 있다더군요. 핀잔 겸 무엇을 보았는지 묻곤 합니다.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지요. 버릇처럼 넘기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정보가 세상의 전부도 아닙니다. 인디안 격언이라던가요? "지식을 추구하지 말고 지혜를 추구하라, 지식은 과거의 산물이지만 지혜는 미래를 가져다준다." 그런가 하면 공급자와 소유자 모두에게 필요한 말도 있더군요, "어제 때문에 오늘을 다 보내지 말라." 매사 적당이가 중요합니다.
사이버 상에만 소통의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사가 문제점을 수반하지요. 모두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상이몽도 많습니다. 최근 하노이 회담 결렬도 소통의 문제가 아닐까요? 지역, 성별, 세대, 이념 등 우리가 말하는 갈등의 대부분도 소통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위에 소통의 많은 문제점을 나열했습니다. 그중에도 특히, 거짓은 최대의 악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돌아오는 10일은 도산 안창호(安昌浩, 1878 ~ 1938)선생 서거일입니다. 도산은 거짓을 나라를 죽인 원수, 불공대천(不共戴天)으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하였습니다. 성실을 다짐하며 외치기도 합니다. "평생에 죽어도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 네 가죽 속과 내 가죽 속에 있는 거짓을 버리고 성(誠)으로 채우자고 거듭 거듭 맹서합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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