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세연정 |
올해 봄 여행을 보길도로 결정한 것은 사실 지난 1월이었습니다. 보길도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지만, 남도의 끝이라는 것도 그렇고 내게는 생소한 곳이기 때문에 여행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해 가을 우리대학 박물관이 매년 2번 실시하는 역사기행으로 보길도를 다녀왔지만, 당시 역사기행에는 일반인만 참가가 가능하고 교직원의 참가가 제한되었기에 올해 봄 여행을 보길도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보길도 여행을 결정하고도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여행준비를 거의 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도 여행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길도 여행을 망설이고 있을 때, 보길도에서 숙박할 장소, 찾아보아야 할 곳 등 우리대학 박물관 장과장님의 친절하고 완벽한 보길도 여행안내 덕에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출발 하루 전 받은 장과장님의 자세한 안내 메일을 근거로 메일에 적힌 그대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보길도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역사탐방 때 작성한 보길도 안내 자료집에 적혀 있는 윤선도의 행적과 알지 못했던 자세한 역사적 사실은 그냥 관광의 차원이 아닌 역사탐방의 의미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장과장님의 추천으로 찾은 정자리 고택은 말 그대로 안내 표지판조차도 없었었지만, 보길도 역사탐방 자료에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그 의미를 차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자리 고택은 약 150여년이 된 김양제 고택으로 원로 사학자이신 박옥걸 아주대 명예교수님이 살고 계신 고택입니다. 고택의 입구에서부터 잘 가꿔진 정원은 과거의 흔적과 함께 현재의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과거 나의 롤 모델이던 최인호 작가도 머물렀던 곳으로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내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고택을 둘러보면서 과거 이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전주의 고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님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요즘 최근의 기억을 못하시고 어린 시절 과거 기억만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님을 보면서 정자리 고택은 아마도 어머님께도 과거로의 회귀를 가져오는 듯했습니다.
보길도 정자리 고택 |
역사는 국가나 정부 그리고 사회의 역사도 있고, 어떤 단체나 집단의 역사도 있고, 개인의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고 그 역사에 대한 의미를 가져야만 역사로써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중요시하고 역사를 찾고 그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바로 과거의 것들로부터 현재의 의미와 정통성, 상징성 등과 같은 현재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찾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전망과 희망 그리고 비전을 역사를 통해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나 정부, 단체와 개인의 역사는 과거와의 연계 속에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해 미래를 향한 지속된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3.1운동의 의미는 아마도 지난 100년의 시간 속에서 그때그때의 현실인식 속에서 그 의미가 다소 다르게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3.1운동 자체의 의미는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변화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비록 1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우리 사회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고, 앞으로의 미래 또한 수많은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그 자체로써 가장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어머님을 보면서 개인의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85년을 살아오시면서 개인적으로 꼭 기억해야 하고 또 잊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일들이 어머님의 생애에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아마도 어머님께는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어머니 개인의 역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어머님의 개인적 역사가 어머님의 기억 속에서 하나씩 지워지고 있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보고 있는 심정은 그냥 안타깝기만 합니다. 올해 아버님이 없이 어머님만을 모시고 다녀온 봄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어머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기억과의 투쟁을 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전 배를 타고 보길도에 들어 온 것을 기억하지 못하시고, 보길도에서 나오는 배를 탄 것만을 기억하시는 어머님께서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섬에 들어가면 집에는 어떻게 가느냐고 계속해서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하고 싶은 것을 간직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봄을 맞아 비록 어머님은 바로 잊으시더라도 어머님과 함께한 봄의 시작은 적어도 내내 나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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