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간신' 중 한 장면. 연산군에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한 간신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
그런데 흥청망청이란 고사성어는 중국이 아닌 조선중기 연산군과 간신 임사홍의 아첨(阿諂)로 인해 비롯된 것이다. 이른바 '흥에 겨워 마음껏 즐기며 거드럭거린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돈이나 물건 따위를 아끼지 않고 마구 쓰는 경우'를 비유해 쓰이고 있다. 당시 일어났던 고사를 살펴보자
1494년 조선의 제 10대 왕이 된 연산군은 그를 낳아 준 생모 폐비 윤씨가 사사(賜死)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피 묻은 적삼을 보고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의 패악(悖惡)과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 갔다.
몇 차례의 피 보라가 조정 안팎을 지나고 나자 쾌락중독에 젖어든 연산군에게 간신 임사홍과 그 아들 임승재는 갖은 아부로 연산군의 기분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임사홍 부자는 고심 중에 무릎을 치면서 생각해 낸 묘안이 바로 조선팔도의 미녀들을 징발하여 왕을 기쁘게 하려는 것을 생각했다.
계획이 완성되자 즉시 "채청(採靑) 채홍사(採紅使)"라는 특별 전담반을 구성하였는데 채홍사란 전국 각 지방에 파견되어 미색이 뛰어난 기생이나 여인들을 찾아 한양으로 데려 와야 하는 특명을 받은 벼슬아치들이다. 이들 채홍사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자는 벼슬은 물론 토지와 노비를 포상으로 주었다. 연산군일기에 채홍사 가운데 성적이 가장 으뜸인자는 임사홍으로써 삼천여 명의 미녀를 찾아다 바치고 포상을 제일 많이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때 전국 각지에서 1차에 합격된 여인들을 "운평(運平)"이라 불렀으며 그렇게 선발되어 뽑혀온 여인이 무려 일만여 명에 달했는데 일만여 명의 여인들 중에서도 기예와 미색이 가장 출중한 절세미녀 300명을 다시 연산군이 직접 심사하여 뽑았는데 이 여인들을 "흥청(興淸)"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전국에 채홍사를 파견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쾌락의 늪으로 빠져들어 얼마 후에는 "홍"은 여자를 "준" 은 말을 가리키는 뜻으로 '채홍제찰사', 또는 '채홍 준 종사관' 등의 새로운 벼슬자리를 만든 뒤 담당자를 고위직으로 교체하여 파견하였다.
당시 연산군은 백마가 정력에 좋다고 믿고 말고기를 즐겨 먹었으며 혼인하지 않은 처녀를 "靑女"라 칭하여 각 지방 양반가의 미혼처녀를 선발하여 데려오기 위해 "채청녀사. 채홍준 체찰사. 채홍준 종사관. 채홍준 순찰사"등을 8도에 파견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흥청으로 선발된 여인들에게 방중술을 통한 건강 증진법을 가르치는 내시부 교육담당 관리도 두었는데 이를 채홍사라고 불렀다.
연산군이 연일 잔치와 행사로 탕진하여 소비되는 엄청난 비용을 공신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충당하려 하자 공신들과 관료들의 반감이 커지고 끝내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은 폐위되고 말았다.
수천 명의 절세미녀들을 껴안고 재물을 물 쓰듯 하다 신세 망친 연산군의 몰락을 지켜본 이들은 "흥하는 청이 아니라 망하는 청"이라는 뜻에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요즈음 정부에서는 국민의 세금 사용을 복지(福祉)라는 명분아래 아끼지 않고 마구 쓴다고들 염려들 하고 있다. 걸핏하면 '지원(支援)'이라는 구실아래 안 주어도 될 곳에도 선심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다.
사서(四書)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있는 구절이 생각난다.
生財有大道 生之者衆 食之者寡 爲之子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재산을 생산하는데 큰 방법(대 원칙)이 있으니 재물을 생산하는 자는 많고, 먹는 자(생산직이 아닌 사무직이나 공직자)는 적고, 일(물건을 만드는 자)하는 자는 빨리하고, 쓰는 자(소비자)는 천천히 하면 (그 나라)재산은 항상 풍족하다
공짜로 받는 것 결코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 자생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흥청망청하는 소비를 생산의 증대로 바꾸어 보는 것도 경제발전에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장상현/ 인문학 박사, 수필가
장상현 박사의 강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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