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삶의 한 시기를 통과하는 청춘들 '가만한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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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삶의 한 시기를 통과하는 청춘들 '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승인 2019-02-28 13:15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가만한나날
 민음사 제공


보드 위에 벌떡 일어설 때의 감각을 떠올리려 애썼다. 처음에는 눈물이 고일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몰입했다. 단계별로 감각을 하나하나 되살려 냈다. 마치 보드와 한 몸이 된 것처럼 가슴과 아랫배와 허벅지를 붙이고 납작 엎드려 있을 때, 멀리서 파도가 다가올 때의 조짐과 흥분과 망설임, 난 일어날 수 없어, 이건 불가능해, 그러나 물살이 보드의 뒤쪽을 둥실 들어 올리자 눈을 질끈 감고 벌떡 일어났을 때.

(……) 그 느낌을 미려는 기억했다. 다음 순간에는 물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속력이 점점 느려졌다. 흔들리는 물 아래로 땅이, 물결의 흐름대로 무늬가 새겨진 부드러운 모랫바닥이 투명하게 비쳤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얕은 잠」 중에서





작가 김세희의 2015년 《세계의 문학》 당선작 「얕은 잠」 속, 미려는 연인 정운과 함께 서핑을 하다가 홀로 외딴 곳으로 떠내려가게 된다. 수영도 할 줄 모르지만 정운이 하고 싶어 해서, 그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한 서핑이었다. 오랜 연애 중인 미려는 정운과 같이 갔던 곳의 길을 혼자 가면 헤매고, 그가 바다로 먼저 출발할 때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처럼 온 몸이 얼어붙을 만큼 그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서핑 중 얕은 잠에 빠졌다가 모르는 곳에서 혼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헐벗고 한없이 무방비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결국 낯선 이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돌아온 서핑 숍. 미려는 정운이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호텔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 김세희가 그리는 연인들은 열렬하지 않다. 언젠가 열렬했던 적이 있었을 그들은 지금 복잡하고 아련한 마음으로 서로를 본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야」의 진아는 연하 애인 연승의 부탁으로 그가 우상처럼 여기는 선배의 집에 방문한 뒤, 연승과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의 나는 애인에게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함께 부양하자는 부탁을 할 수 없으며, 미래에는 자신도 버림받게 되리라고 예감한다.

작가가 주목하는 삶의 한 시기는 바로 연애와 이별의 구간이다. '혼자'는 기나긴 연애를 끝내며 비로소 길러진다. 「얕은 잠」에서 수영을 하지 못하는 미려가 난생처음 서핑보드에 올라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한 것처럼. 작가는 처음 세상을 '혼자' 대면할 때 느끼는 슬프면서도 기쁜, 어렵고 벅찬 성장의 순간을 독자들에게 마주하게 한다. '회사' 속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한 「감정 연습」, 「가만한 나날」, 「드림팀」에서는 자기 마음 속 악의와 미움을 깨닫거나 타인에게 기대와 배신감을 느끼는 주인공들을 보여준다. 첫 사회생활을 통과하거나 기대하는 많은 청춘들이 만나게 될 감정이다. 문학평론가 신샛별의 해설처럼 작가는 지금 청년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그들 고유의 심리적·윤리적 중핵을 가리켜 보인다.' 형용사 '가만하다'는 사전적 정의로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가만한 나날을 보내기 위해 흔들리는 청춘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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