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 VR 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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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칼럼] VR 과 AI

박진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부회장

  • 승인 2019-02-28 10:09
  • 신문게재 2019-03-01 14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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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부회장
'엄마, 합격했어요!' 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개강 전이라 집에 와있던 대학생 딸아이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보내온 문자다. 요즘은 면허증 따기가 이전보다 많이 수월 해졌다고는 하지만 실제 자동차로 연습한 것은 몇 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면허증을 손에 쥔 것이다. 운전학원을 찾아보더니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우는 곳이 있다며 이곳에 등록을 했었다. 그리고 일주일 남짓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기초적인 기능을 습득하고 주행하는 방법까지 연습했었는데,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이제 엄마가 힘드실 때 제가 모시러 갈 수 있어요' 라며 환하게 웃으면서 면허증을 내밀어 보인다.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VR) 기술 연구를 하고 있는 필자에게 이렇게 우리 아이가 동네에서 실제로 시뮬레이터를 활용했다는 것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상현실은 위키백과에도 정의되어 있듯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 혹은 그 기술 자체'를 의미한다.

의료영상데이터의 분석 및 시각화 그리고 3차원 모델링을 연구하던 필자가 처음 VR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년전 미국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경각심으로 의과대학에서의 교육 패러다임 변화가 시작된 때였다. 복강경수술과 같은 새로운 수술 방법을 습득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 대상이 사람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상 환자이며, 효과적인 훈련이 되기 위해 연구 개발되어야 할 컴퓨터 그래픽스의 모델링, 시각화기술, 컴퓨터 햅틱스의 촉감기술, 그리고 인간-컴퓨터-상호작용 연구인 HCI기술이 융합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개복수술과는 달리 복강경수술은 몸속에 넣은 작은 카메라로부터 전달받은 영상을 모니터에서 보면서 수술 도구를 유연하게 이용하여 정교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환경이기에 구현이 가능하다. 물론 현재 상태로는 아직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낼 수는 없지만 훈련 목적으로 다양한 임상케이스들을 만들어 줄 수 있고, 반복적으로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훈련과정을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해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우리는 많은 환자를 수술한 경험이 있는 외과전문의를 더 신뢰하게 되는데, 비록 가상환경이지만 이러한 풍부한 경험을 VR기술이 제공해줄 수 있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나듯이, 우리는 이런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안정적인 학습에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 터득하는 면도 많지만 제대로 잘 배울 수 있도록 가이드 해주는 안내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상자가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반복적인 실수를 하는지 등을 잘 파악하여 이에 맞춘 훈련내용을 적시에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인공지능 (AI) 기술에 대해 여러 분야에서 기대를 많이 하는데, 가상훈련 분야에서도 분명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삶에 점차 녹아 들어가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전문의보다 판독을 잘하는 AI가 직접 진단과 최종 판단을 하는 때가 곧 올 것이다. 일반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특정 분야들에는 이미 그런 때가 많이 근접해 있을 것이며 AI가 제공한 결과가 유효한지, 판단이 맞는지 정도만 전문의가 최종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전문의들은 그동안의 많은 훈련을 통해 다양한 사례에 대해 숙지할 수 있었고 그리고 그 훈련안에는 실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 경험이 더 훌륭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AI가 어려운 일을 다 해주는 시대에서는 우리는 배우는 과정을 충분히 가지지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AI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산기가 있으니 셈하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될까? 계산기가 준 값이 정답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운전을 시뮬레이션으로 배운 경험을 물었더니, 처음에 속도를 내볼 때 사고가 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운전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차량의 브레이크와 시뮬레이터와는 차이가 좀 있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다른 차량들의 움직임에 대한 대응도 해볼 수 있어서 아빠와 함께 지난 주말에 도로에서 주행을 해 본 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디지털로 채워져 가는 시대에 이런 아날로그도 공존하는 것이 우리 마음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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