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얇아도 추위를 막을 수 있다. 행실이 경박하면 사는 마을에서조차 용납될 수가 없다. 음식은 거칠어도 시장함을 면할 수가 있다. 마음이 심술궂으면 방 안에서조차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마음」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한 문장가이자 북학파 실학자로 알려진 이덕무가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 나던 젊은 날에 쓴 글 중 하나다. 서얼 출신으로 절박한 가난 속에서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하던 그는 늘 빈 공책을 놓아두고, 좋은 글귀와 만나면 그때마다 옮겨 적었다. 스쳐지나가는 단상도 붙들어 두었다.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18세기 지성사를 탐구해 온 고전학자 정민이 그중 네 편의 글을 엮고 해설을 달아 『열여덟 살 이덕무』를 펴냈다. 세월과 정신은 한번 시들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으니 눈앞의 시간을 아껴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뜻을 담은 『세정석담』 마흔 세 단락, 공부하며 스스로 경계로 삼아야 할 내용을 짤막한 글로 써서 모은 『무인편』 서른 여덟 단락, 쾌적한 인생을 살기 위한 여덟 단계 『적언찬』 여덟 단락, 어린 두 누이를 생각하는 오빠의 마음을 담은 『매훈』 열일곱 단락이 268쪽에 담겼다.
위에 소개한 「마음」이라는 글에 정민 교수는 '(…)경박한 행실은 온 마을의 손가락질을 부르고, 고약한 심보는 방 안에서조차 편히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실에는 신경을 안 쓰고 입는 옷만 신경을 쓴다. 마음 공부는 멀리한 채, 배불릴 궁리만 한다'는 해설을 덧붙였다. 이덕무가 저 글을 썼을 때보다 세 배의 인생을 더 산 경험과, 마음을 들여다볼 줄 모르고 변화의 속도만 재촉하는 현대사회를 견뎌낸 통찰에서 나온 글이다. '인간이 과연 발전하는 존재'인지, '문화가 진보를 거듭했다고 하나 삶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는 서문도 같은 맥락이다. 18세기 청년이 쓴 글에 지금도 공감이 가는 이유다. 젊은 이덕무의 자기경영 다짐으로도, 중년 학자가 담은 세상사의 고민과 성찰로도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