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상상력으로 범람하는 명사들…'무구함과 소보로'

  • 문화
  • 문화/출판

[새책] 상상력으로 범람하는 명사들…'무구함과 소보로'

임지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승인 2019-02-27 12:55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무구함과 소보로
 문학과지성사 제공
'선생님은 지은이를 기억합니다

나는 지은이가 아니지만, 지은이일 수도 있습니다

얼굴 속에 얼굴을 넣고 다녔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매점엘 갑니다

나는 지은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합니다



눈을 뜨자 저녁이 차려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지은이를 지우고 다른 얼굴을 답니다



콩자반을 집어 먹으며 내가 몇 개인지 셉니다

끝까지 세기 어려워 다시 처음부터 셌을 뿐인데 무한히 늘어난 검은 눈동자들이 나를 쳐다봅니다



욕실로 달려가 비누로 얼굴을 문지릅니다

표정은 자꾸 손끝에서 미끄러지고 나는 나를 몇 번이나 놓칠 뻔했지만 얼굴들을 잘 씻어 서랍 안에 넣어둡니다



수건처럼 개켜진 옆면들, 내가 너인 순간들

함부로 뒤집어 벗어놓은 이 얼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베란다에 가보면 엄마가 내일 사용해야 할 얼굴들을 빨랫줄에 널어두었습니다' -뒤표지 글 전문



대전 출신 임지은 시인의 첫 시집 『무구함과 소보로』가 출간됐다. 시인은 2015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개와 오후」 외 네 편을 발표하며 등단, "이미지에 대한 변전(變轉)의 상상력이 과감"하고 "일상적 삶의 풍경들을 간결한 터치로 낯설게 녹여"(문학평론가 강계숙, 강동호)낸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무구함과 소보로』에는 다양한 명사형 시어가 등장한다. 이들은 낱낱으로 해독되기보다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돼 독특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가 넘어져 다른 하나의 상태를 완전히 전복하는 방식으로 연쇄되는 것이다. '필통에 코끼리를 넣고 다녔다/지퍼를 열었는데 코끼리가 보이지 않았다/거짓말이었다/오렌지였다'는 시 「과일들」의 부분에 등장하는 명사들은 얼핏 무관해 보이는 존재들이 실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명사들은 상상력으로 범람하며 기존에 부여받은 의미에서 벗어나 변화하면서 독자들을 생경한 지점에 옮겨 놓는다. 그 지점에서 시의 새로운 가능성 역시 열린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1.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2.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3. 백석대·백석문화대, '2024 백석 사랑 나눔 대축제' 개최
  4. 남서울대 ㈜티엔에이치텍, '2024년 창업 인큐베이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5. 한기대 생협, 전국 대학생 131명에 '간식 꾸러미' 제공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