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완용은 냉정하고 절제할 줄 아는 유형의 인물이오. 지극히 현실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게지요. 인간세계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까. 평화로운 시기는 잠깐이고 하루도 안 빠지고 지구촌은 전쟁에 시달리잖소. 그게 다 뭐겠습니까. 하나라도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거 아닙니까. 내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 게 인간의 심리입니다. 프로이트는 남자들에겐 전쟁을 욕망하는 심리가 있다고 했나요? 사냥본능이라는 거 말이오. 거 아이들도 땅따먹기 놀이가 있잖소.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 넉 놓고 앉아 있던 썩어빠진 조선 땅덩어리는 얼마나 먹기 쉬운 먹잇감이었겠소. 미국도 집적, 러시아도 집적, 일본도 그렇고. 그러다 결국 일본이 먹은 거 아닙니까.
조선 말기, 대한제국을 생각하면 참 한심했습니다. 그때 상황이 어땠습니까.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위정자들과 양반들은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유교적 전통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무능한 고종은 이렇지도 못하고 저러지고 못하는 허약한 군주였소. 영악한 민비는 친정 민씨 일가를 등에 업고 시아버지와 기 싸움 벌이고 있었지요. 고백하건대, 나는 알려진 바와 같이 처세의 달인 맞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요. 좋게 말하면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지요. 나 같은 사람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일본이 우리한테 순순히 도장을 찍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한다고 으름장을 놓았소. 그 상황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소. 난 그때 우리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만 생각했소. 냉정하고 실리적으로 판단했단 말이오. 나라를 지킬 의지조차 없는 고종을 믿느니 현실적으로 일본에 기대 경제발전을 이룬 다음에 무슨 수를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사실 일본 아니어도 다른 강대국이 우릴 가만 뒀겠습니까. 결과적으론 총대 맨 내가 매국노를 자처하게 됐지만 당시 우리 조선의 운명은 일본에 의해 결정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소.
또 변명하자면 일본의 주구 노릇하며 호의호식한 인간이 어디 나 뿐이겠소. 권문세가 후손들이나 지주, 지방의 토호들은 물론이고 윤치호, 이광수, 인촌 김성수 등 각 분야 수없이 많았단 말이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사람이 몇명이겠냐 이 말이오. 물론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오. 그게 그들의 운명이고 난 영악하고 영혼없는 악인으로 살기로 작정했던 거요. 어제·오늘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회담 열리는데 참 재밌는 볼거리요. 사업가 트럼프도 그렇지만 김정은은 나이는 어리지만 영리한 지도자요.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은 정의라는 단어로 얘기하면 안되오.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란 말이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명분에 집착말고 국제 정세를 잘 간파해서 현실적으로 대응해야 하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손익계산을 잘 해야 하오. 아무튼 이번 북·미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오. 매국노 이완용 이만 물러갑니다.<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