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꿈꿀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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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꿈꿀 수 있는 사회

  • 승인 2019-02-26 09:57
  • 신문게재 2019-02-26 22면
  • 유지은 기자유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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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꿈은 만화가였다. 9살, 처음으로 품은 꿈은 초등학교 내내 계속됐다. 동네 만화방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온갖 종류의 만화책을 읽고 따라 그려보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만화가라는 꿈은 "너 정도 그림 그리는 애들은 흔해 빠졌다"는 엄마의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그다음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중학교 때 급작스럽게 꽂혀버린 꿈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됐는데, 난 손은 빠르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연주자였다. 한마디로 전문 연주자가 되기엔 재능이 모자랐다.

세 번째 꿈은 수학자였다. 재능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후 찾은 꿈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여하튼 그랬다. "그래프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수학 선생님의 말에 홀딱 넘어간 거다. 네 번째 꿈은 막연한 수학자라는 꿈의 구체화된 모습으로 경제학자였다. 계량경제학자. 쉽게 말해 교수. 이 꿈도 성적이라는 현실 앞에 무너졌지만.

27살. 지금 내 꿈은 결혼이다. 특별히 결혼이라는 두 글자 안에 자가 소유와 생활 안정이라는 내막을 숨겨 놨다. 꿈이라는 것에 가치를 매기고 싶진 않지만 그간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미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래에 내가 무얼 하고 있을까가 아닌 내 몸 하나, 이후엔 둘, 그리고 셋까지 편히 누울 수 있는 장소의 존재 유무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그 꿈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이상하게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꿈인 것 같은데 자꾸 현실에 부딪친다.

최근 대출 상담을 받으러 갔었다. 상담 결과 청년이며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4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최대 1억이라고 하더니 결국 내가 빌릴 수 있는 금액은 그 절반도 못됐다.

돌아오는 길 대학 시절 친구들과 밤 산책 때 나누던 농담을 떠올렸다. '저렇게 아파트가 즐비해 있는데 그중에 내 집은 하나도 없네.' 그래도 그때는 언젠가 집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되겠지라는 생각에 웃었는데 이제는 입이 쓰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뜻. 요즘 내 또래의 사람들은 이 말을 심심찮게 외친다. 지금은 신조어 축에 끼지도 못하는 N포세대로 대표되던 사람들이 결혼도 집도, 인간 존재의 기본인 사회성도, 심지어 괜찮아 질 거라는 희망까지, 포기할 수 있는 모든 걸 포기하니 남은 마지막 외침. 정말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생망을 외치는 오늘날 결혼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을 다해야만 이룰 수 있는 '꿈' 그 자체일지도. 그래도 아직 꿈꿀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아닌 걸까….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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