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난 가정주부였다. 아이들과 남편의 뒷바라지와 시집살이를 하던 전형적인 가정주부. 기껏해야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사회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시작하게 된 직장생활…….
사회 전선에 직접 뛰어 들어와 보니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지 절실히 깨달게 됐다. 컴퓨터는 대학시절 사용했던 한글이 고작인데 지금은 어디서든 엑셀과 파워포인트는 기본이었다. 우리 나이의 여성들이 가장 겁내는 것이 컴퓨터와 디지털 기기들이다. 그동안 집에만 있었으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지만 이제 사회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익히고 능숙하게 사용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내가 가정을 가진 주부라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저 가정사는 사적인 일로 전혀 그들에게 어떤 이유든 정당화 되지 않는다. 그렇게 경단녀들의 사회 재도전은 부담감이 밀려오면서 두려움과 자존감 상실로 힘겹게 시작된다.
경단녀란 결혼과 육아 탓으로 퇴사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이르는 말이다.
100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필자처럼 다시 사회로 나와 일을 시작하는 사오십 대 여성들이 많아졌다. 아이들도 다 키워놓고 그저 집안일만 하면서 가정주부로 살기에는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고 그러므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일이 필요하고 노후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지?
요즘 내 자신에게 다시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고자 할 때 생각해 볼 문제이고 또 일을 하면서도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안 하던 일을 하니 부족한 면이 많고 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계속 좌절만 하고 있을 건가? 그렇다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것인가?
사람마다 길지는 않지만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면 일단 일을 시작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일에서 오는 두려움과 좌절감이 조금 덜 하기 때문이다. 일을 선택할 만큼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 할 수 있는 일로 시작하고 그 속에서 하고 싶을 일을 차츰 찾아가는 것이 적응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직장 동료들과의 유대 관계이다. 이것은 정말 매우 중요하다. 아줌마의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위사람들과 잘 지내다 보면 내가 좀 잘 못하는 게 있어도 사람들이 도와주게 된다. 특히 젊은이들과 친해지면 그들에게 바든 도움이 많다. 나의 일을 대신해주기까지 한다. 좋은 유대 관계는 직장생활을 계속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로 임해야한다. 어떻게든 주어진 자신의 일을 배우고 익히고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영화 '인턴'에서는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70세인 '벤 휘태커'는 취직을 하게 되지만 처음엔 주어진 일이 없어 그저 자리나 지키는 노릇만 한다. 하지만 곧 연륜에서 나오는 처세술과 친화력으로 나이 어린 회사 동료들에게 고민을 상담해주는 상담사의 역할을 하면서 일을 익히고 점점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이야기다.
무슨 일이든 어디에서든 우리가 대하는 자세에 좌우된다. 사람들을 바르게 잘 대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묻고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면 '벤 휘태커'처럼 그 자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50대에서도 자신 있게 일에 임할 수 있는 내가 될 것이다.
김소영(태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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