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당신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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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당신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아십니까!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02-2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7월 중순경 모처럼만에 고향엘 가서 텃밭의 김도 매고 논둑길 풀도 깎았다. 안 하던 일을 해서인지 하룻밤 죽어 자는 단잠으로 시간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눈을 떴다.

동네 이장님의 확성기 목소리가 새벽 산골짝 마을의 적막을 깨뜨렸다.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소리는 새벽잠을 확 깨게 만들었다.

" 안녕하십니까? 마을 이장입니다. 이른 아침 안 좋은 소식으로 방송해서 죄송합니다. 지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던 김삼봉 자당님께서 오늘 새벽 향년 96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김삼봉 자당님은 중풍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고생하시더니 결국 회생하지 못하시고 한 많은 일생을 마치신 것이다.



불혹의 나이에 미망인이 되어 아들 하나 크는 것을 희망으로 사시더니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끔찍할 정도 사랑하던 3대 독자 하나 남겨 놓으시고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이질 않았던지 눈도 감지 못 하시고 운명하신 것이다.

밖에 나가보았더니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이 그늘진 얼굴들로 삼봉 씨네 초상 치를 걱정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웃집에 사는 용식이네는 품앗이로 언덕배기 밭 김매기로 날이 잡혔는데 동네 초상이 났으니 못 한다고 했고, 산비탈집 남식이네 형제들도 물가 천렵을 가기로 한 날인데 동네 초상에 무슨 물놀이냐며 일정을 취소했다고 들었다.

역시 시골 인심이라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풍기는 사람 냄새만으로도 복 받고 살 사람들 같았다. 착한 심성으로 상부상조하며 살려 하는 그 마음들이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가는 세월 붙잡을 수 없다더니 '어허'하는 사이에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나는 일과 중에 지인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조문을 간 적이 있다. 빈소에는 수많은 조문객들로 붐비었는데 그 중에는 알 만한 얼굴들도 다소 있었다. 조문 인사를 한 후 빈객실로 와서 즐비하게 차려진 접객 상에 앉아 식사를 했다. 곁의 좌석을 바라보니 이 분들은 초면이었던지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인사하는 사람들 중에 코미디를 하는 것 같은 일이 벌어져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리 초면인데 인사나 합시다."

"그럽시다. "

"나는 충남기계공고에 근무하는 김○식입니다. "

"나도 충남기계공고에 근무하는 박○근입니다. "

인사에 악수까지 나누고서도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끼리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 멋쩍었던지 어찌 표정들이 좀 이상한 겸연쩍은 얼굴들이었다.

물론 충남기계공고가 대전, 충남 소재 학교 중 학급 수가 많고 거기다 전공 학과 수가 많아 교무실이 여러 개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교사들이 전공 학과 별로 본관 별관 전동 후동, 2층 3층 여기저기 분산된 교무실에 근무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1년이 지나도 같은 학교 교사끼리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현실이 이렇다면 상가에 가서 모르는 사람끼리 만났으니 인사를 나누는 것도 흠이 될 일은 아니잖은가?

이에 파생되는 문제점을 걱정했더라면 학교 친목 차원에서 분기별로 직원체육 아니면 직원 친목 야유회를 한 번씩만 가졌더라도 이런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다.

또 우리는 생활하면서 그냥 간과하기에는 가슴 무거워해야 할 일들을 종종 보고 있다.

도심지 아파트 바로 위층에서는 초상이 나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데 바로 아래층에, 인사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우리 일이 아니니까 하는 식으로 희희낙락하며 놀러 가는 일도 있고, 나가서 술판을 벌이는 일도 있다.

또 아파트 문만 열면 서로 눈길이 마주치는 이웃 사람들인데도 언어불통의 이방인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로, 먹고 사는 데만 신경 쓰는 바람에 인간 유대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 너는 너 식으로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대가 아무리 편리한 시대 산업화시대가 됐다 하더라도 이웃 사람과 오가는 정 속에 인사를 나누고, 따듯한 가슴으로 동고동락하는 인간관계만은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다.

승용차를 타고 전철을 타고, KTX,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 선인들이 짚신 신고 고무신 끌며 살던 시대의 상부상조하던 삶의 그 정신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아니, 인공위성으로 달나라를 이웃집 가듯 하는 문명의 시대라 하더라도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살던 옛날 선인들의 그 따뜻한 가슴을 잊고 살아서는 아니 되겠다.

당신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아십니까!

이웃집에 초상이 났는데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놀러가는, 가슴 없는 기계 쇠붙이로 살지는 말아야겠다.

앞집에 경사스런 일이 있는데도 인사 한 마디 못하는 이방인으로 살아서는 아니 되겠다.

용광로 가슴으로 따듯하게 사는 것이 저 먼 외계인의 것이라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다.

나라고 하는 사람이 혹시 가슴 없는 인공위성의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어 볼 일이다.

사람 냄새와는 담을 쌓은 모조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 좀 해 볼 일이다.

당신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아십니까!

내가 혹시 쇠붙이 가슴을 달고 사는 로버트는 아닌지 한 번 맥을 짚어 볼 일이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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