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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주시하는 이들은 대개 우울한 사람들로 보여진다. 삶의 중력을 느끼는 자 그 누구도 멜랑콜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는 스페인은 눈부신 모자이크 예술의 산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새로가 포착한 타일은 매우 소박한 편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여행 및 유목이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 스페인에서의 레지던시는 친숙하고 편안하지만 구속과 질곡으로도 다가오는 일상의 여러 관계를 끊고 스스로를 다르게 배치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새로움과 진보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를 상대화한다면, 색다른 배열이 탈주일 뿐이다.' -서문 '일으켜 세워진 바닥' 중에서
사진작가 현새로는 갱년기라는 인생의 변화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아이와 남편을 뒤로하고 바로셀로나로 떠난다. 그 곳에서 15일간 머무르며 사진을 찍으면서 바로셀로나의 바닥을 주목한다.
책 『바르셀로나 15일의 자유』는 얼핏 여행기처럼 보일 수 있는 제목이지만 사진 에세이에 가깝다. 서문을 쓴 미술평론가 이선영은 작가가 '별로 주목할 거리가 없는 평범한 것을 사진을 통해 일으켜 세웠다'고 평가한다. 새로울 것 없을 것 같은 오래된 타일 바닥은 사진 속에서 유화 작품처럼 보여 지면서 다른 모습을 획득한다. 과일을 내려놓은 타일은 '기하학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의 대비,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의 대비,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이 대비'되며 제각각의 체계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행으로 일상의 권태를 벗어나듯, 바닥은 시선을 통해 틀을 벗어난다. 어떤 방향, 프레임으로 찍느냐에 따라 바닥의 패턴은 모양을 바꾼다. 광장의 조각상이나 거리를 찍은 사진도 모두가 마음먹으면 비행기를 타고 떠나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지만,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한 시간은 그에게 갱년기를 극복하는 묘약이 됐다. 사진에 찍힌 바닥이 '극적인 위상 변환을' 거친 것처럼, 그 자신도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얻었다. 아마도 그 이후 일상의 풍경 역시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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