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꽃 제공 |
책 표지가 얼굴로 꽉 찼다. 장난스럽게도, 심술궂게도 보인다. 표지를 넘기면 그 얼굴을 한 영감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그 다음 장엔 풍물놀이가 열려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인 한 가운데 표지에서 본 영감 탈이 떡 버티고 섰다. 둘레엔 토끼 탈들이 들썩들썩 거린다. 어디서 쿵딱 쿵딱 풍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윽고 영감탈의 주인공 녹두영감과 토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은 토끼들이 먼저 벌였다. 영감이 뒷산자락을 일궈 심어놓은 녹두를 토끼들이 날마다 와서 따먹는 것. 당하기만 하던 영감은 꾀를 내 녹두밭에 죽은 척 벌렁 드러눕는다. 토끼들이 미안해하며 초상을 치러주려던 차, 영감이 벌떡 일어나 토끼잡이에 나선다.
그림책 『녹두영감과 토끼』는 우리 민담 '녹두영감(또는 팥이영감) 설화'를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민담은 보통 선악과 강약의 구분이 뚜렷하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줄거리를 갖는다. 그러나 녹두영감 설화는 누가 강자인지, 약자인지 또 선한지 악한지 판가름하기 어렵다. 처음에 녹두를 뺏기는 약자였던 녹두영감은 토끼잡는 강자가 되고, 토끼는 쫓기는 약자의 입장으로 도망다니면서도 녹두영감의 집을 망가뜨리니 마냥 약하다고 볼 수도 없다. 작가는 이 복잡한 민담을 탈놀이로 표현해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녹두영감이 대리하는 인간과 토끼들이 상징하는 야생은 한 판의 소동극으로 어우러진다. 신명나게 울리는 징소리와 함께, 싸움 끝 승자의 미안함과 쫓겨난 패자의 한을 한꺼번에 풀어내는 탈놀이 굿판은 실감 넘치는 표정, 너불너불, 알렐레 알렐레하는 말들의 능청거리는 맛이 넘실댄다. 굵직한 선의 그림도 친근하고 구수한, 누룽지 같은 책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