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부장 |
최근에 만났던 모 대학 교수의 말이다. 화가 난 것 같아 하소연을 들어봤더니, ‘대전도안 갑천지구 친수구역 조성사업’ 얘기다. 대전시의 대표적인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로, 2006년 ‘2020 대전도시기본계획’에 등장했음에도 진척이 상당히 느린 사업 중 하나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교수의 얘기는 이렇다.
이 사업 추진을 위해 구성한 대전시 민·관협의체가 1년 넘도록 공회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협의체는 대전시장이 없던 행정부시장 대행체제 시절 급조해서 그런지, 현직인 허태정 대전시장조차 별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교수의 말처럼, 논쟁만 있을 뿐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태생적인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교수는 협의체에 참여한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을 ‘막무가내식’이라며 비판했다.
친수구역 지정 후 5년 가까이 관련 분야에서 내놓을만한 수많은 전문가가 참여해 만들어낸 프로젝트가 몇 명도 되지 않는 이들에게 막혀 꼼짝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물었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몇 가지를 기억해냈다.
1000세대 가까이 계획된 갑천친수구역 2블록 공동주택을 ‘셰어 하우스’(Share-House)로 만들자거나, 계획에도 없는 임대아파트 세대를 늘려달라고 한단다. 주택조합 방식으로 추진하자거나, 2블록 아파트를 모두 5층 이하로 짓자는 의견까지 냈다고 한다.
이 교수를 만나기 며칠 전에는 모 대기업 임원을 만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임원도 ‘시민단체’를 언급했다. 자신들의 사업 분야를 주로 다루는 시민단체에 매년 상당 수준의 금전을 지원하고, 그 외 다른 형태로도 후원한단다.
여러 이유도 있지만, ‘보험’이라고 했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단체지만, 요즘엔 때만 되면 해당 단체가 사업이나 행사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요청해 놀랄 때도 있다고 했다. 이 단체 역시 ‘반대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면서도 대전시 등 자치단체의 의견수렴 과정 곳곳에 참여하고 있다.
위에서 등장한 교수와 대기업 임원이 전한 결론은 ‘협상, 그리고 타협’이다.
사실 시민단체가 ‘찬성’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반대’를 외치지 않으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대 프레임’에 갇히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다. 반대 외에 대안이 없다면 참여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명분도 있고 책임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함께 지혜를 모아 합리적인 해법을 찾자고 테이블에 앉은 후에는 찬성 아니면 반대밖에 없다는 아집은 곤란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여러 측면을 고려해 다른 의견까지 충분히 받아들이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역할을 해내야 한다.
참여했다면 사업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시각과 책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시민단체 권력이 장악한 대전시’라는 오해가 쌓이고 있는 민선 7기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제 공직사회나 시민단체, 관련 분야(업계) 등 어느 특정 집단에 의해 대전시의 주요 정책이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면, 타협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단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겠다면, ‘권력과 돈’을 멀리하고 예전처럼 밖에서 싸우는 게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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