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초등학교 졸업도 겨우 마친 무지렁이가 저서를 발간하고, 언론과 기관의 시민기자 등으로 활약하는 저력의 자본은 무엇인가였다. 다음으론 모 언론사의 논설위원으로 글을 쓸 줄 '아는' 비법이었다.
끝으로는 딱히 사교육이 없이도 딸을 서울대에 보내는 등 '자식농사'에 성공한 비결의 공개였다. 그날 샘터 기자(편집장)는 함구했지만 속으론 분명 '그렇다면 개천에서 용 난 셈이네요?'라고 질문하는 듯 싶었다.
["아버지 막노동꾼···난 개천서 난 용" 임희정 아나운서 고백]이라는 기사를 2월 14일자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 "자신의 아버지가 막노동꾼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한 아나운서의 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최근 '저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임희정 전 아나운서로 그는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소개했다. 올해로 아나운서가 된 지 10년째인 그는 20대 때 기업 사내 아나운서로 일을 시작해 지역 MBC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현재는 프리랜서 방송인, 작가,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 전 아나운서는 "1948년생 아버지는 집안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도 채 다니지 못했다"면서 "일찍이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하는 노동을 하셨고 어른이 되자 건설현장 막노동을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반면) 1984년생인 저는 대학원 공부까지 마쳤다"고 덧붙였다. 임 전 아나운서에 따르면 그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만 보고 으레 번듯한 집안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느냐"는 질문에 "건설 쪽 일 하신다"고 답하면 건설사 대표나 중책을 맡은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중략)
"내가 개천에서 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부모를 보고 배우며 알게 모르게 체득된 삶에 대한 경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를 움직인 가장 큰 원동력은 부모였다"며 "물질적 지원보다 심적 사랑과 응원이 한 아이의 인생에 가장 큰 뒷받침이 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를 보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에 마음속으로 눈물이 장마처럼 흘러내렸다. 드라마 'SKY 캐슬'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일궈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사립인 주남 대학교. 이 대학의 초대 이사장이 서울 근교의 숲속에 세운, 대학병원 의사들과 판.검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들이 모여 사는 유럽풍의 4층 석조저택 단지가 이 드라마의 무대였다.
여기서 소위 명문가 출신의 사모님들은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거머쥔 대한민국 상위 0.1%의 남편들과 함께 산다. 그러면서 제 자식을 천하제일의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그들 자녀들의 'SKY 대학' 입성(入城) 도모는 순탄했을까?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대신 'SKY 캐슬'처럼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 따위들이 자녀의 스펙과 진로까지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엔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시에 합격하는 등으로 확고한 입신(立身)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비싼 등록금이 필요한 로스쿨 제도로 바뀐 이후 이제 법조인이 되자면 돈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다.
대체 로스쿨 제도는 왜 만든 것일까? 어쨌든 임희정 전 아나운서의 말처럼 길거리를 걷다 공사현장에서 노동하는 분들을 보면 그 분의 자식들이 자신의 부모를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해진다고 한 부분 역시 공감의 어떤 레토릭(rhetoric)으로 우뚝했다.
여기서 잠깐, 기억의 무대를 딸이 졸업하던 날로 이동해 본다. 서울대 졸업식장에 도착하니 딸이 친구들과 셀카를 찍고 있었다. "우리 딸 친구들?"이라며 인사를 하니 딸의 친구들이 모두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
"어쩜 그렇게 아빠랑 딸이 붕어빵처럼 닮았어요!" 그날 딸은 졸업장 외에도 서울대학교 최우등 상장까지 받았다. 기껏 초졸 학력의 경비원 딸이 그처럼 영광스런 수상(受賞)을 하는 모습에서 승천(昇天)하는 용(龍)은 개천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필자는 기쁨의 눈물을 아낄 수 없었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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