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해진 왕실 상황 속에서 고종에게 커다란 희망이었던 덕혜옹주, 옹주의 얼굴은 고종의 얼굴을 그대로 빼닮았다.
덕수궁에서 자라던 어린시절 덕혜옹주를 '덕수궁의 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덕혜옹주가 조금 자라자 고종황제는 덕수궁 즉조당에 조선왕실 최초의 유치원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는 덕혜옹주를 왕족으로 만들기 위한 고종의 전략이었다.
유치원까지 150m밖에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덕혜옹주가 가마를 타고 다니게 했다.
함께 다닌 원생들은 덕혜옹주와 또래인 양반가문의 딸들이었는데, 모두 덕혜옹주에게 극존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항상 덕혜옹주를 위해 시중을 들 궁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덕혜옹주를 위한 유치원이었다.
일본인 관리가 고종을 찾아 덕수궁으로 간 날, 고종은 뛰어노는 아이 중 기품있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불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내 말년에 얻는 총아요. 이 아이 덕분에 덕수궁이 기쁨에 넘치고 있소. 내 노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건 오로지 이 아이 뿐이외다."
<출처:타임보드/정미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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