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급변하는 생활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방송 또한 다르지 않지요. 라디오가 전자기기의 역사라 할 수 있지요. 전파에 목소리를 실어 전달하는 기술은 1901년 개발된 것으로 압니다. 우리는 1927년 2월 16일 첫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지요. 처음 방송과 함께 라디오 275대가 보급되었답니다. 1961년 말에야 비로소 100만대를 돌파합니다. 1965년 FM방송국이 개국하였습니다.
전파 혜택도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지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라디오조차 구경하기 어려웠지요. 라디오 방송을 유선 스피커로 청취했습니다. 방송 선택권이 없고, 소리 크기 조절만 가능했지요. 그러다가 몇 개 채널이 달린 유성 방송이 있었습니다. 1966년 흑백텔레비전이 시험 방송을 합니다. 중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아요. 수업시간임에도 불구, 모든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복싱경기 보느라 휴강하기도 하였습니다. 외국에서 하는 경기를 생중계로 본다는 것은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자란 곳은 70가구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한 집에만 텔레비전이 있었지요.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TV 시청을 하였습니다. 1976년 우리 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 컬러 TV가 선보이지요. 1999년 디지털TV가 나옵니다. 크기는 커지고, 두께는 얇아지지요. 격세지감隔世之感입니다.
방송 장비도 놀랍도록 바뀌지요. 기술도 회기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콘텐츠도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됩니다. 고화질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유선화가 되면서 수많은 채널이 등장합니다. 고해상도 컬러 방송으로 자연을 비롯한 모든 현장을 생생하게 안방으로 불러다 줍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생필품이 되면서 통신 및 방송기술이 접목됩니다. 각종 관계망이 등장합니다. SNS을 누리소통망이라고도 합니다. 공통 관심이나 활동 하는 사람 사이에 관계망을 구축하여 정보를 전달, 공유하지요. 우리 대부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SNS 역시 명암이 있습니다. 사생활 노출, 개인정보 침해 등 다수의 문제점이 있지요. 그럼에도 장점이 더 많아 급속도로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방송과 인터넷이 하나가 되면서 헤아릴 수 없는 개인방송이 등장합니다. 부르는 명칭이 다양합니다. 전파나 유선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음성이나 영상을 보내는 것을 방송이라 한다면, 그들 모두 개인방송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시청할 수 있습니다. 두고두고 반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재생할 수 있지요. 구미에 맞거나 원하는 방송을 쉽게 선택 할 수 있습니다. 기존 방송에 비해 장점이 많지요. 구독자가 수십만이 넘는 개인방송이 많아집니다. 재생한 사람은 구독자 수보다 수배가 많습니다. 기존 방송의 시청자수를 능가합니다. 이는 방송의 제작과 유통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지난 해 부터 개인방송 통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급기야, 불법사이트 기준도 없으면서, 지난 2월 12일 SNI필드 차단 기법으로 특정 사이트차단에 들어갔다 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정부가 은근슬쩍 정보통신 규제에 들어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도로에 원활한 소통 및 사고 예방을 위해 교통법규가 존재하듯 정보통신에 많은 규정이 있습니다. 세계가 함께 사용해야 하니까요. IP도 국가별로 배정되어 있고, 표기나 코드 영역 등 각종 이용 방법도 통일 되어 있습니다. 애당초 월드와이드웹은 원활한 소통이외의 어떠한 규제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때 스스로 IT강국이다 어쩌다 했으나, 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CPU, OS, 프로그래밍 도구, 플랫폼 등 제대로 된 정보통신 핵심기술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일부 전산망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했었으나 그마저 유지하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미래사회 정보산업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요. 어설픈 규제나 통제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기술마저 날리고, 발전을 가로막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문화는 저절로 생성소멸 합니다. 나쁜 내용은 스스로 도태됩니다. 부정적이거나 허황된 것, 불필요한 것은 이용자 스스로 연결하지 않습니다. 더러는 사회악도 있을 것입니다. 통신문화가 정착될수록 성숙한 정보통신문화가 자정작용 하리라 믿습니다. 차단하겠다는 발상자 자신이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일부 내용이 불편하다 해서 통제해야겠다는 발상은 삼가 해야 합니다. 제작권, 선택권, 결정권, 이용권 모두 사용자에게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안방에 감시카메라 달겠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인터넷 검열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바랍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고, 구부러진 쇠뿔 모양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矯角殺牛)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기 바랍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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