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과하지욕(袴下之辱)의 용기

  • 문화
  • 문예공론

[문예공론] 과하지욕(袴下之辱)의 용기

장상현/ 인문학 박사, 수필가

  • 승인 2019-02-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종식시키고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은 봉건제(封建制)를 폐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시행했다. 그는 직도(直道)건설을 포함하여 문자(文字), 도량형(度量衡), 화폐(貨幣)를 통일하는 등 강력한 중앙통제의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진(秦)나라는 법가사상을 받아들여 법에 따라 강력하고 공정하게 통치한 결과 가혹한 형벌에 반발해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통일 16년 만에 멸망했다.

한신(韓信)! 그는 한고조(漢高祖)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당시 최고의 무장이다. 사기(史記) 회음군열전(淮陰君列傳)에 명장 한신 장군의 젊은 시절의 고사가 기록 되어있다.

그의 젊은 시절의 고사를 살펴보자

한신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장차 나라의 최고 명장이 되어야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 그는 "손자병법"을 좋아해 밤낮으로 탐독하였다. 또 천하의 최고 명장을 꿈꾸며 다른 무사나 협객들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녔다.



메가박스
과하지욕의 고사를 묘사한 歌川國芳(1798~1861)의 그림/출처=위키피디아(wikipedea)
하루는 그가 주막에서 술로써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술 몇 모금에 취기가 올라오자 졸린 두 눈을 비비며 습관적으로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과 함께 도로 집어넣었다. 한신이 몸을 비틀거리며 주막을 나와 골목에 들어서자 동네 불량배가 팔짱을 끼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보아하니 덩치도 크고 무예에도 꽤나 능한 자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니던데 어디 나와 한번 겨뤄보지 않겠느냐?"고 시비를 걸어왔다.

"어찌 감히 너와 겨루겠느냐. 오늘은 내가 급한 볼 일이 있으니 그만 길을 비켜라"하며 시비에 응하지 않자, "검술은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법은 알고 있을 테지?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검으로 내 목을 쳐보거라." 한신이 한 발자국 물러서자 불량배는 더욱 신이나 말했다.

"키는 8척인 놈이 배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네. 이깟 일에 벌벌 떨다니. 이마저도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 보려무나."

불량배는 저잣거리 가운데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섰다. 두 사람이 오가는 고성에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심한 모욕에 더는 참을 수 없어 한신은 손으로 보검을 꽉 잡고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저 자를 죽이면 나는 살인죄로 신세를 망칠 것이 분명해. 어쩌면 죽을죄를 면치 못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명예나 체면을 지켜서 무엇 하리."

한신은 불량배를 한참을 훑어보더니 납작 엎드려 그의 다리사이로 엉금엉금 기어 지났다. 모여 섰던 구경꾼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 후 사람들은 한신을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놈"이라고 불렀다.

한신이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는 말에서 '과하지욕'이 유래했다.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고도 쓰며, 원문에는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고 되어있다. '跨'은 '타넘을 과, 걸터앉을 고'이고, '袴'는 '바지 고', '사타구니 과'이다.(東亞 漢韓中辭典)

한신은 초왕(楚王)이 된 후, 옛날 자기를 모욕했던 불량배를 데려다가 중위(中尉)에 임명했다.

요즈음 자기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소중한 생명을 죽음으로 연결하는 사례가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것 같다. 잠시의 굴욕이나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려는 자들은 한신의 젊은 시절 과하지욕의 결단과 각오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봄직도 하다.

한결 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의 어려운 일이 없고, 백번 참으면 집안에 큰 화평이 온다.(一勤天下無難事 百忍堂中有泰和(일근천하무난사 백인당중유태화)

'죽을 용기로 살자고 하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장상현/ 인문학 박사, 수필가

5-장상현  박사 강의
장상현 박사의 강의 모습.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긴박했던 6시간] 윤 대통령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2.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국회 본회의 가결
  3. 계엄사 "국회 정당 등 모든 정치활동 금지"
  4. 계엄사 "언론·출판 통제…파업 의료인 48시간 내 본업 복귀해야" [전문]
  5. 충남대, 공주대와 통합 관련 내부소통… 학생들은 반대 목소리
  1. "한밤중 계엄령" 대전시-자치구 화들짝… 관가 종일 술렁
  2.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3. 갑작스런 비상계엄령에 대전도 후폭풍… 8년 만에 촛불 들었다
  4.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5. 계엄 선포에 과학기술계도 분노 "헌정질서 훼손, 당장 하야하라"

헤드라인 뉴스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정기국회 등 올 연말 여의도에서 추진 동력 확보가 시급한 충청 현안들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다시 연기된 2차 공공기관 이전부터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 충남 아산경찰병원 건립,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구축, 중부고속도로 확장까지 지역에 즐비한 현안들이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 지역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단 지적이다. 3일 오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4일 새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등 밤사이 정국은 긴박하게 돌아갔..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는 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내 유망기업 7개 사와 1195억 원 규모 투자와 360여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아이스펙 한순갑 대표 ▲㈜이즈파크 정재운 부사장 ▲코츠테크놀로지㈜ 임시정 이사 ▲태경전자㈜ 안혜리 대표 ▲㈜테라시스 최치영 대표 ▲㈜한밭중공업 최성일 사장 ▲㈜한빛레이저 김정묵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기업의 이전 및 신설 투자와 함께, 기업의 원활한 투자 진행을 위한 대전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신규고용 창출 및 지역..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이 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빠르면 6일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본회의 의결 시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이날 오후 2시 43분쯤 국회 의안과를 방문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세종갑)이 참여했다.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22시 28분 선포한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