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제공 |
이중인격이나 성격분열이라는 단어와 연관돼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면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일 것이다. 학식이 높고 선한 인물로 사회적 명망을 지닌 지킬박사가 인간의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약품을 만들어 복용한 결과, 악성을 지닌 추악한 하이드로 변신하고 점차 악이 선을 이겨 지킬박사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 큰 줄거리다.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한국에서 9번째 시즌을 맞을 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유명한만큼, 그러나 실제로 소설을 읽고 글 속에서 18세기 영국 고딕소설의 전통과 추리소설 구성까지 느껴 본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풍부한 변주를 가능케 하는, 시대를 앞선 작품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나 잭 런던, 헨리 제임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 많은 작가로부터도 작품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는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라는 원제를 살렸다. 가장 인상적인 판본을 남긴 S. G. 흄 비먼의 일러스트를 담았으며, 2006년 <오만과 편견>의 공역자로서 영미문학회의 '번역작품 샘플평가'에서 대상을 받은 전승희 영문학자가 새롭고 충실하게 번역했다.
영화나 뮤지컬 같은 대중문화로 접하는 지킬과 하이드는 각각 인간 본성의 선악을 상징한다. 그래서 지킬은 선한 동기로 실험을 시작했으나 자신이 창조한 하이드 때문에 괴로워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지킬은 "자신의 성격을 어두운 면과 선한 면으로 구분한 뒤 전자를 감추고 후자를 내세워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을 즐기는 극단적으로 위선적인 인물"이다. "학문적 열정, 종교심과 자선" 등의 가치관을 추구함으로써 당시 존경받는 이상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 소설 속에서 그는 "스스로 부도덕하고 악하다고 여긴 성향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다. 오히려 양심의 가책 없이 그런 성향을 발휘하고 즐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악한 인물로 둔갑하는 약을 개발한 것이다." 작가는 지킬을 통해 내면에 잠재돼 있는 '위선'을 경고하고, 나아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왜곡된 도덕의식을 지적한다. 21세기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세계는 지금도 지배욕과 권력욕으로 얼룩져있다. 지킬과 같은 위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다시 읽어야 할 기이한 이야기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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