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
곧 80살이 되시는 엄마는 초등학교도 다니기 어렵던 시절에 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이다. 형편이 어려워 교대 진학을 못한 게 한이 됐다며 지금도 말씀하신다. 나와 3살 터울 오빠는 학구열에 불타는 엄마 덕(?)에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공부 때문에 매 맞는 일은 다반사였고 성적이 떨어지는 날엔 불사지른다며 교과서가 마당 한복판에 나뒹굴었다. 틈 나는대로 담임을 만나는 일은 엄마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오빠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한 자식, 난 실패한 자식이다. 공부와는 담 쌓은 나와 달리, 오빠는 그런 엄마를 보며 늘 숨막혀했다. 급기야 지역 국립대 장학생 타이틀을 버리고 재수를 결심하더니 '인서울'에 성공, 엄마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났다. 이제 오빠는 일본쯤에 사는 '해외동포'가 됐다.
그렇다면 오빠 대신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날 택한걸까… 남편 복 없이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오신 친정엄마에게는 자식들, 특히 나를 향해 날리는 고정 멘트가 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를 시작으로 "넌 나한테 서운하게 하면 절대 안된다", "너희 키우느라 내 인생은 없었다"며 당신 삶의 이유를 자식에게 귀결시키고 그간의 노고에 대해 알아주길 수시로 어필하신다. 신혼여행 4박5일 외엔 엄마와 떨어져본 적이 없고 손주들 육아까지 도움 받다 보니 따로 살지만 한 식구나 다름 없다. 이러한 물리적 거리보다 중요한 게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남편의 발령으로 이사를 고민하면 "너 없는데 여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당신 집 팔고 따라갈 요량으로 부동산부터 찾아가신다. 당신이 원하면 아무때나 딸 집 비밀번호를 누르신다. 여행도 늘 함께여서 결혼 10주년 기념여행도 엄마와 동행했다.
부모의 '어긋난 자식사랑'은 내 친정엄마만은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 자원' 만이 유일한 살길이고 희망인 대한민국. 이는 부모세대로 하여금 자식 교육에 더 투자하고 역량을 집중하게 만든다. '자식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신념에 스스로 노예가 된다. 'SKY 캐슬' 한서진의 "네가 아무리 잘나가도 자식이 실패하면 그건 쪽박 인생이야" 명대사처럼… 두 아이를 키우는 나 역시 윤여사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엔 솔직히 대답하기 어렵다. 적어도 집착인 줄 모르고 '다른 방식의 사랑'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반조하고 사유할 뿐이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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