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걸 감안한 아내의 '쿨한' 성격이 그처럼 두 아이 내외를 못 오게 한 것이다. '쿨하다'는 영어 '쿨(cool)'에서 나온 용어로, '멋'의 개념이 들어간 상황과 '뒤돌아보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는 바보짓이다'라는 식의 사고로 대변되는 말이다.
한데 이 또한 콩글리시(Konglish)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필자가 영어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다 알다시피 '콩글리시'는 정통 영어가 아닌, 한국어식 영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한국어식으로 발음된 단어와 원어에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어 표현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튼 설날, 잠시 처갓집에 다녀왔다. 장모님께서는 외손녀의 출산 축하금이라며 큰 돈을 주셨다.
그 돈을 딸에게 송금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잠시 전 오빠와 새언니(며느리)가 집에 왔단다'고 문자가 왔다. 아들은 자신의 차에 장착된 내비를 보고 제 여동생의 집을 잘 찾아갔을까?
여기서 잠깐, '인생의 '내비'는 없나'를 일견(一見)한다.
- "(전략)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이 지구상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면 종이지도와 표지판, 나침반에 의존했다. 1920년대 영국에서는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 다발을 손목시계처럼 만들어서 갖고 다녔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1981년 일본 혼다자동차에서 개발한 '일렉트로 자이로케이터'가 시초다.(중략) 내비(navi)는 물론 내비게이션(navigation)의 약어다. 항해라는 뜻을 가진 navigation은 배, 비행기, 자동차의 항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길 도우미라는 의미로 내비, 또는 내비게이션은 올바른 영어표현이 아니다. navigation system, 혹은 navigation device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
저자는 그러면서 "길 안내 말고 인생의 행로를 안내할 GPS는 어디 없을까?"라며 화룡점정으로 글을 마치고 있다. [저널리즘의 외래어 진단 - 뉴스와 콩글리시](저자 김우룡 & 출간 행복에너지)는 ENGLISH와 KONGLISH, 그 사이에서 숨 쉬는 역사와 문화, 인문학적 교양 이야기를 다룬 수준 높은 역작이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가면서 영어가 한국어 사이에 깊이 배어든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생긴 한국식 영어, 소위 '콩글리시'들은 대부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콩글리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곤 했는데 "콩글리시는 한국어의 순수성을 해치는 불순물"이라고 규정하며 언어 순화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콩글리시를 또 하나의 우리 문화로 판단하고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호응을 받아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범람하는 콩글리시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를 갖고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이 책 『뉴스와 콩글리시』는 언어는 약속이며,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콩글리시가 정착되었다면 그것을 굳이 배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콩글리시가 올바른 영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고 개개인이 올바른 영어 표현을 익혀 세계적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서도 일침(一鍼)을 놓치지 않는다.
- "사진도 학력도 고향도 안 보고 뽑습니다. 이름하여 블라인드 채용이다. 사진, 출신대학, 전공, 학점, 고향, 가족관계, 신체조건… 이달부터 공공기관, 공기업(공공기관 332개, 지방공기업 149개) 입사지원서에서 이런 내용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조선, 2017. 7.6)
(중략) 예부터 사람의 평가는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해왔다. 선거지(選擧志)에 나오는 이 말은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體貌] 말씨[言辯] 글씨[書跡] 판단[文理]을 이르는 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물평가의 잣대다. (중략)
좋은 인재를 골라 쓰려면 눈을 크게 뜨고(with one's eyes wide open) 사람 됨됨이를 관찰하고 평가해도 모자랄 터인데, 있는 자료 모두 버리고 눈을 감고(blind) 뽑겠다니 천상천하 이런 엉터리 전형이 어디 있을까.
물론 필자 역시 학벌 위주 사회를 비판한다. 대학의 서열화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좋은 대학 출신이 반드시 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서울대 나온 게 무슨 죄라고 학교이름과 전공, 학점까지 감춰야 하는가. (중략)
'지역인재 30% 할당제도' 역시 논란이 많다. 이 판에 황당한 이 제도까지 시행된다면,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 필요가 없게 된다. 설령 들어가도 좋은 학점 따려고 밤새워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해외연수나 봉사활동, 인턴경험도 쓸데없는 짓이고 영어나 외국어 능력도 무용지물이다. 취준생은 오로지 면접 훈련에 힘쓰고 외모나 잘 가꾸면서 당일 컨디션 조절에 힘써야 한다. 인생은 그저 한 방 운(運)임을 가르치는 사회는 비극이다.
동기(motivation)부여가 없는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공정하다는 것은 불평등의 원리다. 능력 있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대우받게 될 때 국가는 성공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채용을 제비뽑기로 하면 어떨까?" -
구구절절 옳은 주장이 아닐 수 없어 탄복했다. 필자의 딸 역시 서울대 출신이다. 사위도 마찬가지다. 아들 또한 올부터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중도일보 2월 3일자엔 "충남대병원, 블라인드채용 우수기관 선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충남대병원은 앞으로도 편견 없는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더욱 고도화해, 실력중심의 공정한 채용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단다. 블라인드 채용 우수기관은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합동으로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의 블라인드 채용 우수사례를 발굴, 확산하기 위해 시행한 '편견 없는 채용, 블라인드 채용 공공부문 우수성과 경진대회'에서 1차 서류심사와 2차 발표심사를 거친 후 우수기관을 선정했다고 한다.
충남대병원의 블라인드채용 우수기관 선정에 딴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앞으로도 블라인드 채용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장차 학력의 망징패조(亡徵敗兆)로 귀결될 조짐이 농후하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죽어라' 공부하는 것은 그에 걸맞는 대학을 가려는 목표와 아울러 직장 또한 안정적인 곳을 지향하는 때문임은 불문가지다. 여하튼 필자는 젊었던 시절에 영어회화 교재를 판매했다. 그래서 잘 아는데 대학까지 나왔어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임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이는 이 책의 저자 주장처럼 학교에서 영어를 '콩글리시'에 입각하여 허투루 가르친 때문이다. 이 책은 가급적 저널리즘(journalism)의 범주 내에서 잘못된 콩글리시 현상을 일갈한다. 따라서 이 영역을 더욱 넓히면 콩글리시의 '우스개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곰탕이 'Bear tang'이라니!"P.327~330)가 반증이다. -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에서 영어 수준은 부끄럽다 못해 창피스럽다. tteokbokki, sundae, gimbap, galbitang…. 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인 대관령 주변의 식당 메뉴판을 고발한 신문기사다. 떡볶이, 순대, 김밥, 갈비탕의 영어표기가 이 지경이다(조선, 2017. 4. 19). 외국인이 대관령 횡계리 주변 식당에 와서 주문하려면 무슨 암호를 풀어야 한다." -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한국어이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국어 이상으로 영어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미국에서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얼마나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상대는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 책 『뉴스와 콩글리시』는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콩글리시'를 방송과 신문, 잡지 등 언론에서부터 찾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콩글리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렇기에 더더욱 인문학적 교양으로서 빛을 발하는 지식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콩글리시'를 환기한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영어와 글로벌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새삼 펑펑 샘솟아 오르길 바라는 마음에 일독을 강추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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