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가치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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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가치의 문제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2-0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책상 서랍 속에 깊숙이 보관되어 있는 작고 오래된 비닐로 만든 가방이 내게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 가방은 1980년대 초에 은행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 가방이 오래된 것이라서 소중한 것도 있지만, 사실 그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내게는 보물입니다. 가방 속에는 대학시절 학생증과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 당시 외무부에 다닐 때 받은 공무원증과 당시 쓰던 만년필, 그리고 대학시절 찍었던 사진 몇 장과 그 밖에 몇 가지 소품이 들어있습니다. 사실 가격으로 따지면 아마도 전혀 가치 없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은 한 때 내 인생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 내게는 매우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물건들은 유학을 떠나면서 한 군데 모아둔 것인데, 유학생활을 하면서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고, 또 어디에 두었는지 조차도 잊고 살았던 것들입니다. 이 물건들을 그 동안 여러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아직까지 간직하게 된 것은 사진이 붙어 있는 물건들이라 어머니께서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약 10년 전쯤 부모님의 이사 도중 다시 찾은 이 물건들을 통해 잊고 지냈던 대학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신분증과 학생증 그리고 몇 장의 사진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대학생이었던 아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놀라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은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물건들은 조금만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집안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 본인이 사용하던 물건들도 그렇고, 서서히 유물로 되어가는 부모님의 소품이나 어릴 때 받은 상장이나 졸업장, 졸업앨범 같은 것도 평소에는 찾지 않지만 개인에게는 매우 소중한 물건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쓰던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풍물시장에서 발견하는 오래된 물건들이나 헌책방에서 볼 수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 같은 것도 이런 의미에서 소중한 물건이고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가격으로 따지면 사실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망가진 태엽을 감는 손목시계와 같이 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를 꼭 돈의 가치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합니다. 내게는 정말 쓸모없는 버려야 할 것들도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남들에게는 가치 없는 것들도 내게는 아주 유용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를 판단할 때 돈의 가치로만 따지는 것은 정말 의미 없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내가 대전에 정착하고 대전에서 내가 살 집을 장만할 때, 주위 친구들은 서울에 세를 끼고 집을 사고 대전에서는 전세로 살라고 진심으로 권했습니다. 당시 대전의 집값과 서울의 집값은 집의 크기에서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크게 벌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전의 집값은 내가 산 가격과 거의 같은 수준이지만 서울은 서너 배가 올라 있으니, 집값의 가치만 따져보면 당시 친구들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은 정말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애 처음으로 구입하는 내 집에 산다는 가치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가치는 상대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게도 가치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어떤 기준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의 내용과 정도가 달라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가치가 상대적이라고 해서 각각이 느끼는 가치의 내용과 정도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한 가치를 생각할 때, 그 일에 따른 보상의 수준이나 대가(代價)가 만족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일을 할 수 있고 할 일이 있다는 의미에서 가치를 따진다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에 비하면 무한한 행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한다는 가치와 그 일을 통해 얻게 되는 대가나 보상에 대한 가치는 그 내용과 기준, 그리고 척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판단하는 것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가치의 문제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정치적 견해와 입장 그리고 판단이 내게는 중요한 정치적 가치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수용하고 동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정치적 의미와 판단과 견해를 내가 무조건 수용해야 하고 인정하고 따라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가 지닌 생각과 견해와 판단은 그 자체로써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판단과 가치와 견해는 자신이 경험하고 겪고 있는 현실을 토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환경에 속해 있는 다른 사람의 견해와 판단은 또 다른 상대적 가치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가치의 문제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다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치의 문제는 맞고 틀림을 다투는 문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무엇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판단되고 평가하는가에 따라서 가치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런 가치의 문제를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판단하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판단이나 견해나 가치에 대해서 듣기보다는 자신의 판단과 가치에 따라서 남을 판단하고, 그것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오류를 흔히 범하게 됩니다. 가치의 문제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가치의 문제가 아무리 상대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신적 가치만큼이나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 물질적 가치를 다른 가치의 판단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이것은 돈이나 물질적인 재산의 많고 적음이 행복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흔히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고 있는 급여나 보상의 수준이 때때로 자신의 가치나 인생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어쩌면 불행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가치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그래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을 찾는 척도가 물질적인 보상이나 가치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작은 행복감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주말이 다가옵니다. 비록 물질적인 가치에 따른 행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가 주는 행복을 찾아보는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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