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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꼬마들이나 보통의 부부들도 그냥 생일을 넘기는 적이 거의 없다. 최소한 미역국에 평상시 먹지 못하는 맛있는 음식이 생일상에 오르고 주인공들이 탐탁하게 여기는 선물들까지 오가게 된다.
젊은 연인들은 생일날 부모님이 집에서 차려주시는 진수성찬에 미역국을 먹고 나서 또 연인이 불러내는 음식점에 가 이성친구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기도 한다. 먹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까지 받는 것이 다반사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성 친구가 있는 고등학생은 이성 친구가 보내주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생일선물 세트가 학교까지 배달되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연세 드신 어른들께는 생신 전의 휴일을 택하여 자손들이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이나 용돈을 드리는 것이 이집 저집의 생일문화인 것 같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린이나 젊은이, 연세 드신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생일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이 챙겨 주고 챙겨 받는 것이 현세의 우리 생일 풍속도이다.
우리 집도 여느 집의 가족들처럼 생일을 보내곤 했지만 아내의 생일만은 그렇지를 못했다. 아내의 생일만은 예외로 살아 왔다.
아내는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면 전날 장모님이 계신 금치리 친정으로 가곤 했다.
생일인데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른 날 장모님 뵈러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아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생일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날로 자신이 축하를 받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자신을 낳으시기에 온갖 진통을 겪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가 오히려 위로와 대접을 받아야 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생일 하루 전날 장모님께 미역국을 끓여 드리러 친정에 갔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생일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반대할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들어보니 지당하면서도 온건한 생각이었다. 아내는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지극히 건전하고서도 사람 도리를 다하는 효행심에 오히려 애착이 가곤 했다.
아내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을 달리하는 선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온건한 생각에 공감한지라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차제에 생각해보니 우리의 생일문화를 바꾸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지론대로 생일은 한 생명체를 낳기에 온갖 고생과 진통을 겪으신 우리 어머니들이 미역국 한 그릇이라도 대접받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생일문화도 그렇게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내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조를 해 주었다.
나도 아내와 같은 생각으로 살다보니 결혼생활 36년에 아내의 생일을 날짜에 맞추어 한 번 챙겨 주지 못했다. 처가에 갔을 때 장모님한테 여쭤봤더니 아내는 시집오기 전 소녀시절이나 처녀 때에도 자신의 생일을 모르고 살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렇게 해서 아내는 평생 생일 없는 여인으로 살다가 아주 먼 나라로 바삐 가 버렸다.
그 흔한 생일 미역국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식구들이 챙겨 주는 생일 상 한 번 받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한 해만 더 기다려주었어도 어떻게 해서든 환갑 생일을 제대로 챙겨 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평생 생일 없이 살다 간 아내를 생각하니 미역국 투가리만 보아도 아내 생각에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감정이 무뎌질 만큼 세월이 흘렀는데도 마음의 상처는 왜 이리 생생한 숨을 뱉어내는지 모르겠다.
달력을 쳐다보니 8월 20일(음력 7월 18일) 아내의 생일 표시 볼펜 자국이 나를 어렵게 했다. 마침 토요일이어서 마음도 달랠 겸 아내한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통하게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딸애가 같이 가자고 했다. 마침 사위가 회사 쉬는 날이라 사위가 운전을 했다. 저의 엄마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한 딸이 저의 엄마가 생전의 생일에 들지 못했던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 보온병에 넣고, 어디서 구했는지 제 엄마가 좋아했던 안흥찐빵 한 개와 믹서 커피 찻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엄마 챙기는 정성에서 식을까봐 보온 도시락과 보온병에 챙겨 담는 딸애였다.
사위와 운전대의 덕분에 탈 없이 아내의 그림자처럼 서 있는 묘비와 상석 앞에 와서 나와 딸과 사위 외손녀는 장승처럼 서 있었다. 상석위에는 딸애가 준비한 정성 절반에 한이 절반인 생일 미역국과 안흥찐빵 한 개 커피 한잔이 놓여 있었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오늘이 당신 생일이야. 당신이 이승 생일에는 들지 못했던 미역국이랑 안흥찐방이랑 커피를 당신의 사랑하는 딸 보라가 챙겨왔으니 맛있게 들어요.
보온 덕분으로 식지 않은 상석 위의 미역국과 안흥찐빵 한 개, 커피 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생 생일 없는 여인.
지하에서 받는 생일 미역국 한 그릇, 안흥찐빵 한 개, 커피 한 잔….
어떤 훈장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교훈을 남기고 간 여인임에 틀림없었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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