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평생 생일 없는 여인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평생 생일 없는 여인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02-0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미역국
게티 이미지 뱅크
요즘은 가정마다 식구들 생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챙겨주는 것이 우리 생일문화인 것 같다. 아기가 돌인 엄마 아빠는 아기가 세상 처음 맞는 생일이라서 특별한 돌잔치 상으로 손님을 초대하기가 일쑤이고, 칠순 팔순이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자손들이 챙겨주는 생신 상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집에 있는 꼬마들이나 보통의 부부들도 그냥 생일을 넘기는 적이 거의 없다. 최소한 미역국에 평상시 먹지 못하는 맛있는 음식이 생일상에 오르고 주인공들이 탐탁하게 여기는 선물들까지 오가게 된다.

젊은 연인들은 생일날 부모님이 집에서 차려주시는 진수성찬에 미역국을 먹고 나서 또 연인이 불러내는 음식점에 가 이성친구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기도 한다. 먹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까지 받는 것이 다반사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성 친구가 있는 고등학생은 이성 친구가 보내주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생일선물 세트가 학교까지 배달되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연세 드신 어른들께는 생신 전의 휴일을 택하여 자손들이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이나 용돈을 드리는 것이 이집 저집의 생일문화인 것 같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린이나 젊은이, 연세 드신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생일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이 챙겨 주고 챙겨 받는 것이 현세의 우리 생일 풍속도이다.

우리 집도 여느 집의 가족들처럼 생일을 보내곤 했지만 아내의 생일만은 그렇지를 못했다. 아내의 생일만은 예외로 살아 왔다.

아내는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면 전날 장모님이 계신 금치리 친정으로 가곤 했다.

생일인데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른 날 장모님 뵈러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아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생일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날로 자신이 축하를 받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자신을 낳으시기에 온갖 진통을 겪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가 오히려 위로와 대접을 받아야 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생일 하루 전날 장모님께 미역국을 끓여 드리러 친정에 갔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생일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반대할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들어보니 지당하면서도 온건한 생각이었다. 아내는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지극히 건전하고서도 사람 도리를 다하는 효행심에 오히려 애착이 가곤 했다.

아내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을 달리하는 선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온건한 생각에 공감한지라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차제에 생각해보니 우리의 생일문화를 바꾸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지론대로 생일은 한 생명체를 낳기에 온갖 고생과 진통을 겪으신 우리 어머니들이 미역국 한 그릇이라도 대접받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생일문화도 그렇게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내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조를 해 주었다.

나도 아내와 같은 생각으로 살다보니 결혼생활 36년에 아내의 생일을 날짜에 맞추어 한 번 챙겨 주지 못했다. 처가에 갔을 때 장모님한테 여쭤봤더니 아내는 시집오기 전 소녀시절이나 처녀 때에도 자신의 생일을 모르고 살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렇게 해서 아내는 평생 생일 없는 여인으로 살다가 아주 먼 나라로 바삐 가 버렸다.

그 흔한 생일 미역국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식구들이 챙겨 주는 생일 상 한 번 받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한 해만 더 기다려주었어도 어떻게 해서든 환갑 생일을 제대로 챙겨 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평생 생일 없이 살다 간 아내를 생각하니 미역국 투가리만 보아도 아내 생각에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감정이 무뎌질 만큼 세월이 흘렀는데도 마음의 상처는 왜 이리 생생한 숨을 뱉어내는지 모르겠다.

달력을 쳐다보니 8월 20일(음력 7월 18일) 아내의 생일 표시 볼펜 자국이 나를 어렵게 했다. 마침 토요일이어서 마음도 달랠 겸 아내한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통하게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딸애가 같이 가자고 했다. 마침 사위가 회사 쉬는 날이라 사위가 운전을 했다. 저의 엄마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한 딸이 저의 엄마가 생전의 생일에 들지 못했던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 보온병에 넣고, 어디서 구했는지 제 엄마가 좋아했던 안흥찐빵 한 개와 믹서 커피 찻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엄마 챙기는 정성에서 식을까봐 보온 도시락과 보온병에 챙겨 담는 딸애였다.

사위와 운전대의 덕분에 탈 없이 아내의 그림자처럼 서 있는 묘비와 상석 앞에 와서 나와 딸과 사위 외손녀는 장승처럼 서 있었다. 상석위에는 딸애가 준비한 정성 절반에 한이 절반인 생일 미역국과 안흥찐빵 한 개 커피 한잔이 놓여 있었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오늘이 당신 생일이야. 당신이 이승 생일에는 들지 못했던 미역국이랑 안흥찐방이랑 커피를 당신의 사랑하는 딸 보라가 챙겨왔으니 맛있게 들어요.

보온 덕분으로 식지 않은 상석 위의 미역국과 안흥찐빵 한 개, 커피 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생 생일 없는 여인.

지하에서 받는 생일 미역국 한 그릇, 안흥찐빵 한 개, 커피 한 잔….

어떤 훈장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교훈을 남기고 간 여인임에 틀림없었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5.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1.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