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 실험실 밖으로 나온 측정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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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칼럼] 실험실 밖으로 나온 측정과학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승미

  • 승인 2019-02-07 11:55
  • 신문게재 2019-02-08 22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표준연 이승미 박사
요즘 우리 세간살이가 다양해졌다. 침대와 책상 등의 가구 외에도 텔레비전, 공기청정기, 가습기처럼 삶의 질을 높이는 물건들, 그리고 체중계, 온도계, 계량컵 같은 측정기구들. 게다가 21세기 가정에는 실험실에나 있을법한 측정기들도 한 몫 차지한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자 장만한 공기청정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불티나게 팔린 방사능 측정기, 2018년 봄에 침대마저 안전치 않다는 뉴스에 구매한 라돈 측정기, 이번 겨울 판매량이 급증한 일산화탄소 감지기까지. 이들을 가정에서 구매하는 계기로 어느 하나 충격적이지 않은 소식이 없었고, 어느 하나 사람 목숨이 달리지 않은 게 없었다.

이처럼 우리 일상은 이전 세기와는 매우 다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간밤의 뉴스보다 미세먼지 농도부터 알아보고, 마트에서는 방사능 측정기로 해산물을 검사하고, 라돈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리면 아무리 추워도 창문 활짝 열어 환기하고, 때때로 보일러 주변에 일산화탄소가 검출되는지 살피는 일상.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2000년에는 급기야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크뢰첸이 재조명한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환경과 기후,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시점부터를 따로 지질 시대로 분류한 단어다. 아직 지질학 공식용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010년 이후에는 폭발적으로 이용되어 이제는 환경학뿐 아니라 철학 등 인문사회학 분야에서까지 활용되고 있다. 인류세 개념에 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환경변화를 명백히 보여주는 측정값들만큼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다. 20세기 초와 비교하여 지구의 평균온도가 약 1도 높아졌다는 명백한 사실, 그리고 해수면 상승과 상대습도 증가와 같은 관측결과들 말이다. 측정과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구온난화 현상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해가 갈수록 날씨가 이상해진다며 하늘만 탓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통 속의 개구리들처럼. 정밀측정 없이는 이번 세기의 새로운 개념이자 용어인 인류세도 생겨나지 못했다.

측정은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 우리는 아침에 핸드폰에서 동네 미세먼지 수치를 읽으면서 어떤 환경 속에 있는지 실감 나게 깨닫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미세먼지는 맨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다. 미세먼지 PM10과 초미세먼지 PM2.5는 각각 직경이 10 마이크로미터(μm)와 2.5 μm 이하인 입자 물질을 일컫는다. 1 μm는 백만분의 일 미터니까, 머리카락 단면 위에 대략 30개 정도 PM2.5 입자를 나란히 붙여 세울 정도의 크기다. 작아도 보통 작은 게 아니다. 사람이 눈을 부릅뜨면 간신히 보이는 크기가 대략 100 μm니, 이보다 십 분의 일 크기인 PM10이나 사십 분의 일인 PM2.5가 맨눈으로 보일 리 없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는 2013년에 미세먼지를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게다가 불행히도 인간의 코는 아직 초미세먼지를 거를 수 있도록 진화하지 못했다. 측정이 없다면 대기오염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던 런던의 그레이트 스모그 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재발했을 것이다. 측정과 관측으로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에 비유한다면 개인은 각종 세포이고,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이웃 국가끼리 서로 영향을 미치고, 다른 사람들이 내 주변을 변화시키듯 나도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며, 나 하나가 세상을 당장 바꿀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욱 급속도로 나빠질 뿐임을.

측정은 실험실에서만 하는 게 아니며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업무가 아니다. 과학기술에 기반한 생산품들을 일상용품으로 쓰는 21세기. 측정과학은 이미 실험실 밖의 우리 일상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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