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그리운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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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그리운 이웃

민효선/ 수필가

  • 승인 2019-02-0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이웃사촌
게티 이미지 뱅크
결혼하고 단독주택에 10년을 살다 노은 신도시로 아파트를 분양 받아 이사를 한 일이 있었다. 그 후 노은까지 도시철도가 연결되는 호재로 인해 노은은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였기에 층간 소음으로 인한 아래윗집 간에 다툼도 없게 되었고, 주차 공간 때문에 이웃과의 다툼도 없어져서 마음 편했다.

생활 기반 시설이 단독주택보다 좋아 마음이 편했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도 아파트를 선호하는 듯싶다.

살기가 풍요로워지고 행복지수가 높아감에 따라 대전에도 단독주택이 사라지고 새로운 신도시가 생기며 터널과 지하도가 생기고 도로가 뻥뻥 뚫리기 시작하더니 그 길가로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분양하는 족족 엄청난 경쟁률로 프리미엄이 붙어 정부에서 간섭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주거의 편리함과 투자 가치의 두 마리 토기를 잡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모델하우스의 행렬에 줄을 선 것이다.

나 또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함인지 새로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재작년에 지족동으로 이사 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맘에 들고 먼저 살던 노은과의 좋은 추억도 있어 바로 옆 지족동 끝자락까지 오게 되었다. 시내권보다 2도 가량 낮은 온도로 올 여름 선풍기를 몇 번 틀지 않고도 쉽게 잠이 들 수 있었다. 쾌적한 공기며, 야트막한 산등성의 푸르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거실 벽에 걸어 둔 액자의 멋진 풍경화를 보는 듯, 눈이 즐거운 동네다. 마음이 행복한 우리 동네다.

그런데 삼 년을 사는 동안 나는 이웃과의 교감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과 새로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힘든 감정노동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오는 고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맘이 컸기 때문이리라. 특히 젊은 부부이기 때문인지, 나이 차이 때문인지, 내 옆집 부부와 '까닥' 고개 인사만 나눌 뿐, 10초 이상의 대화를 그들과 나눈 기억이 없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옆집, 아랫집, 윗집 모두 바뀌었다. 이삿짐 옮기는 '드르륵' 소리로 그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알뿐이다. 그러다보니 그들과 똑같이 우린 그저 고개만 '까닥' 일 뿐. 관심 밖의 이웃이 되어 버렸다. 서로 소통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하여,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가깝다 하여 그들과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까닥' 인사만 나누는 옆집 젊은 부부를 볼 때마다, 그리운 이웃이 생각난다. 옆집 부부의 어린 아이들을 보노라면 햇살처럼 환히 투영되는 얼굴이 있다. 이웃을 향해 내 마음을 주었던, 더듬어 볼 수 있는 그들이 생각난다. 노은동 살던 당시 나의 윗집에 아기 엄마가 이사를 왔었다.

그 아기 엄마는 두 아이들 때문에 늘 고개를 숙이며 죄인 아닌 죄인 모습으로 미안함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가끔 그녀는 시댁에서 보낸 귀한 농산물과 손 편지로 구구절절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초저녁 한 잠 푹 잔 아기는 밤 10부터 새로운 에너지로 뛰어다녔다. 그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 아기가 깨어나기 전에 자야 한다며 일찍 잠자리에 드는 헤프닝을 하곤 했었다. 윗집 아이들 뛰는 소리로 잠을 잘 수 없는 힘든 세월이 2년이나 계속 되었다. 2년 동안 우리가족은 한 번도 언짢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윗집 아기 엄마의 그 예쁜 마음과 오고 가는 정으로 우린 친척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되어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후 그들이 이사한다는 소식에 사실 우리 가족 모두는 환호를 했다. 특히 나의 아들 둘은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밤마다 뛰는 그 발자국 소리를 더는 듣지 않아도 된다며 두 손 번쩍 만세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얼마 후 그녀는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 갔다. 종종 마주칠 때마다 그녀로부터 난 보너스를 받았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한단다. 하니 그 보너스 받는 기분도 꽤나 쏠쏠한 재미였었다.

그들과 나눈 2년 동안의 정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다. 그 귀하고 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내 아이들이 사랑과 배려가 많은 청년들로 잘 자랐다는 것이다. 가장 값진 보물이 후에 보너스로 오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곧 그들이 이사 가고 연세 드신 두 부부가 오셨다. 처음에는 조용해서 무척 좋았지만 곧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 고요함에 '까르륵' 웃던 그 웃음소리가 이내 그리워지게 됐다. 그렇게 그들과의 교감은 세월이 흘렀어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SNS나 페이스북으로 얼굴도 모른 채 친구를 만들어가며 그들과 소통한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들을 친구라 하며 이웃이라 한다. 모든 것이 빠른 세상, 친구와 이웃도 이렇게 빠르게 변하여 가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날마다 대하는 이웃보다 얼굴도 모르는 핸드폰 속 그들이, 더 가까운 이웃과 친구가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에겐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고,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는 우리의 옛말도 있는데.

민효선/ 수필가

민효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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