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의 조부와 부친 모두 재상을 지냈답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하면서 집안이 몰락합니다. 조국을 멸망시킨 원수를 없애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여 동지를 규합합니다. 기원전 218년 시황제 행차에 철퇴를 던져 암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암살 실패 후 숨어 살 때에 황석공(?石公)으로부터 병법을 배웁니다. 유방(劉邦, BC256 ~ BC195, 한 고조)이 군사를 일으키자 1백여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합류합니다. 유방의 핵심 참모가 되어, 탁월한 전략과 지혜로 한 나라 건국과 천하통일에 일조합니다.
한 왕조 건국 후 장량은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황제에 등극한 유방이 공신들에게 포상할 때에도 자신의 공은 미미하다며, 스스로 몸을 낮추고 권력의 중심에서 떠나 있습니다. 유방의 사람됨과 여태후(呂太后, 본명 呂雉, 생몰미상, 유방의 비)의 간악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방은 남을 존중할 줄 모르고, 의롭지 못하며, 참을성도 없고, 의지도 약했던 모양입니다. 여태후는 요즘말로 간교하게 국정을 농단했답니다. 장량은 끝내, 신선술을 배우겠다며 장가계로 숨어듭니다. 역시나 여태후는 장량이 장차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모함하지요. 유방은 장가계를 공격하지만 천연요새를 정벌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공신이 유방과 여태후에게 목숨을 잃습니다. 장량은 유방이 세상을 등진 후 8년이나 더 살다 가지요.
이야기를 통하여 장량의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진나라에 대한 복수를 보게 되지요. 유방을 한나라 건국자요, 대륙의 패자로 만듭니다. 아울러 빼어난 처세술을 보여 줍니다. 처세에서 중요한 하나가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알고, 멈출 때 멈출 줄 아는 지혜입니다. 역사에 이러한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하나 더 소개 할까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의 범려(范?, 생몰미상, 월왕 구천의 책사)도 이에 해당합니다. 중국 최초의 대실업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당시 월나라와 오나라가 일진일퇴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월왕 구천(句踐, 미상 ~ BC465, 월왕 BC497~465 재위)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킵니다. 여기에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인 서시(西施, 생몰미상)가 등장합니다. 소위 미인계이지요. 서시를 발탁한 범려는 다양한 기예, 이성 유혹법, 정보수집 방법 등을 교육하지요. 오왕에세 보내 후궁이 되게 합니다. 오왕은 초호화판으로 서시를 살게 합니다. 거대한 토목사업을 일으키는 등 결국 오나라 민생과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BC473년 오왕의 자결로 두 나라 대결이 끝나게 되지요.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범려는 "공(公)이 많으면 화(禍)가 뒤따라온다."라며 왕의 만류에도 월나라를 떠납니다. 이때 범려가 같은 공신인 문종(文種, 생몰미상)에게 "나는 새를 잡으면 활은 곳간에 처박히고,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오.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이 새처럼 뾰족하니 고난은 함께하여도 즐거움은 함께 나눌 수 없는 사람이오. 이러할진대 어찌 구천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오?"라 합니다.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拘烹)'이란 말이지요. 범려는 교육 중 사랑하게 된 서시를 데리고 사라집니다. 그 후 문종은 구천이 내린 검을 받고 자결합니다.
살아보니 세상에는 가까이 하기에도 멀리 하기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 하던가요. 특히 개인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그러함을 봅니다.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달라지는 사람도 있더군요.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지요.
지난 연말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커다란 이슈가 될 사건이 연달아 터집니다. 국정 폭로를 시작으로, 의원들의 공항 갑질, 재판청탁, 투기의혹과 방송사 사장의 폭행, 청와대 보좌관의 무리한 발언, 대통령 자녀 동남아 이주, 댓글 조작 판결 등 사태의 윤곽 파악조차 어려울 지경입니다.
성공한 사람 공통점이 목표 향한 부단한 노력이라 하더군요.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한 게지요. 필자 같은 필부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한 길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위 사건에 결부된 사람들 역시 그 자리 가기까지 지난한 노력을 하였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그런가 하면, 잘 못된 만남, 진퇴를 모르는 처세가 내면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의 패가방신敗家亡身으로 끝나지 않아 안타깝지요. 조직과 나라에 감당하기 어려운 화를 미칩니다. 함께하는 것은 서로에게 힘이 되기 위함이요, 산을 오르는 것은 오로지 내려오기 위함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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