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을 지속적으로 듣고 생각을 되풀이함으로서 자기암시가 되나 봅니다. 요즈음엔 다양한 마인드컨트롤 기법이 교육에 많이 활용되더군요. 지금 같았으면 좋은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고 아름다운 삶을 상상하였을 것입니다. 예술가는 곤궁하다거나 경제활동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야말로 무능력이요, 무기력의 시작이지요. 그런 까닭에 열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늘 부러웠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매진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삶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길이 어렵고 고달프며 외로운 것일까요? 숙명일까요? 동서고금(東西古今)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었을까요? 그러한 활동이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요, 공유해야 하는 일이면 서로 돕고자 하더군요. 바로 메세나(Mecenat) 운동입니다. 대가 없이 문화예술 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입니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숙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지요. 보다 활성화 되고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1994년 4월 한국메세나협의회가 발족되었다더군요. 지원활동을 통해 균형 있는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노력 합니다. 협의회뿐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도 예술 활동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나아가 기업 경영 자체를 문화예술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경우도 봅니다.
예술가를 회사소속으로 해 두고 월급을 챙겨주는 기업도 보았습니다. 활동을 도와주고 동참해 주기도 합니다. 작품을 열심히 사주어 적극적인 문화예술 소비자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예술품 거래를 알선해주기도 합니다. 나아가 그를 직업으로 삼기도 합니다. 큐레이터, 이벤트사가 그에 해당될 것입니다.
예술가뿐만 아니지요. 이지에 밝지 못하고 경제활동이 부실하거나, 활성화, 사업화 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지요. 물론, 오유지족(吾唯知足)이 행복의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꽤 유명한 순대국밥집이 있습니다. 그저 찾아주는 손님이 고맙고,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즐거움입니다. 신바람 나게 일하는 것이 행복이자 보람입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다른 사람이 기업화를 도모하고 브랜드화 하자 부추깁니다. 기업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오래지 않아, 운영이 부실해지고 명칭도 빼앗깁니다. 평생 일궈온 식당도 운영이 어렵습니다. 안타깝지요.
마녀사냥식 언론 행태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새해 벽두부터 손혜원 의원 문제가 일파만파 파란이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고일어나면 의혹이 첨가되더군요. 잘못된 일도 많고, 과유불급인 경우도 많습니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알다시피 타인에게 인격말살적 폭언을 일삼던 사람입니다. 작은 지적을 견디지 못해 앙탈 부리는 당돌함, 강한 항변이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의아스럽긴 마찬가지 입니다. 선의도 아닙니다만, 선의이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말인가요?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 바른 의식이 작동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편이면 어떠한 잘못도 허용된다는 것인지요? 손 의원은 열정적이고 사업마인드가 뛰어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점이 많은 것도 분명하지 않은가요? 문화예술을 진정 사랑한 순수한 의도와 결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정당한 공익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하나같이 자기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어 있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지나치게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더군요.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과 행위에는 존재 이유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문화예술뿐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긍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한 분야만이 지고지순(至高至純)하고 다른 사람은 저급하다거나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언행이 놀랍기만 합니다. 의도가 좋다고 모든 행위가 정당화 되지는 않습니다. 나전칠기 명장들에 대한 행위도 문제가 다분합니다. 예술가를 존중하고 빛내며 창작활동을 북돋고자 한 활동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사적이익만 존재하고 숨어있는 것으로 보일 따름입니다.
자연인이 정당하게 사적 이득을 취하거나 그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공인이 모든 행위를 자신의 사업과 사익에 결부시키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혹여, 예술가와 문화예술을 지원해오던 기업이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가 되지 않을까? 순수한 애정을 왜곡시키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문화예술이 곧 경제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하지요. 그렇다고 문화예술인들이 존중받고 대접받는 사회는 아직 아닙니다. 이제 사회가 보다 진지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려 합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