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엄마 마음의 빈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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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엄마 마음의 빈 둥지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01-2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해거름 노을이 하 아름다워 산책을 나갔다가 신세대 엄마 한 분을 만났다. 또 현충일에는 효 진흥원 전시관 안내 해설을 하다가 가엾은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두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반추해 보면서 우리 삶의 현주소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신세대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네 살 난 호석이는 엄마를 너무 좋아하여 엄마는 호석이를 자신의 껌딱지라 불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밤 잠잘 때까지 엄마 곁을 떠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으니 그럴싸하게 부친 애칭이었다. 호석이는 잠잘 때까지도 엄마 곁을 내주지 않을 정도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호석이는 < 나 크면 엄마와 결혼할래.> 이런 말까지 했고,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남다른 사랑과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던 호석이가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엄마와 친구처럼 카톡방 친구로서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만 해도 호석이는 엄마와 카톡방 친구가 되어 수시로 문자와 카톡 정보를 주고받았다. 엄마는 아들 호석이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호석이는 4학년이 되었다.



호석이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호석이가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마우면서도 대견스럽기만 했다. 거기다 호석이 카톡 문자를 받는 것이 일과 중 기쁨이기도 했다. 허나 호석이가 4학년이 된 후 열흘이 지나고 스무날이 되어도 호석이 문자는 올 줄을 몰랐다. 엄마는 호석이 카톡방이 열리지 않아 호석이한테 카톡 문자도 보낼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심 끝에 알아봤더니 호석이에게 여자 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그 바람에 호석이는 엄마하고 하던 카톡방을 나간 것이었다. 호석이는 4학년 여자 친구와 새 카톡방 문자를 주고받느라 엄마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호석이는 여자 친구 때문에 엄마하고 하던 카톡방을 없애버린 것이었다. 엄마는 순간 충격처럼 느껴지는 아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아들이 벌써 엄마 품안을 떠난다는 생각에 엄마는 공허감으로 허덕였다. 뭔지도 모르는 감정에 자신이 빈 둥지가 된 느낌으로 슬픔까지 밀려오는 것이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엄마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상한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매달고 사는 기분이었다.

호석이 엄마는 얼마나 서운하고 기분이 씁쓸했을까!

또 아들을 빼앗긴 것 같은 공허감과 슬픔에 마음이 얼마나 아리고 아팠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반갑지 않은 선물을 받았으니 호석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 때에 받아야 할 기막힌 선물을 생각하니 미어지는 아픔이었다.

호석이 엄마는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먹구름에 휩싸여 우울한 마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호석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된 후 장가를 가게 되면 완전히 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삶의 의미가 흐려지고 한숨까지 나오게 되었다. 인생에 대한 회의감으로 우울증까지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음은 효 진흥원 전시관 안내 해설할 때 만난 할머니 얘기를 해 보겠다.

전시관 볼거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연세를 여쭤봤더니 8학년 7반이라고 하셨다. 87의 연세로 보기에는 믿겨지지 않는 동안(童顔)이었다. 할아버지와 같이 오셨으면 더 좋았을 거라 했더니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할머니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해 할머니의 말 상대가 되어 주었다. 할머니는 무언가 답답해서 집을 나오신 것이 분명했다. 한 맺힌 가슴에 쌓아두었던 얘기를 누군가에게 쏟아놓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보려 거동하신 것임에 틀림없었다.

연속 시리즈로 나오는 말씀 가운데에는 양념처럼 묻어나오는 아들 딸 며느리에 대한 푸념이 심심치 않게 들어 있었다. 전시관 관람보다는 말 상대를 만나 수다를 떨며 한 풀이를 하러 오신 할머니로 보였다.

마침 관람객도 없는데다 안내 해설이 끝났기 때문에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 맞장구를 쳐 드렸다. 할머니는 호기(好期)를 만난 듯이 한 맺힌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할머니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딸 모두 말썽 없이 대학까지 졸업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남매를 결혼시킨 후 돌아가셨다고 했다.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퇴직을 해서 연금도 나오고 유산도 좀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하셨다.

물질적인 것엔 문제가 없었지만 그 큰 집에 늘 보는 것이 벽과 천장뿐이니 그게 힘들고 어렵다고 하셨다. 아플 때 이마 한 번이라도 짚어 주고, 따뜻한 물 한 그릇이라도 떠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게 눈물이 나오고 마음 아프다고 하셨다. 거기다 아파도 온정어린 말 한 마디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때는 말도 못하게 외롭고 슬퍼서 죽고 싶다고까지 하셨다. 할머니의 자식, 남매는 모두 맞벌이 부부여서 손주들이 다섯 살 될 때까지 다 키워 주셨다고 했다. 손주들 키워 주실 때는 고독이란 단어도 모르고 살았는데 할아버지 세상 떠나신 후에는 눈물과 한숨밖에 없는 삶이라 하셨다.

자식들이라는 것이 제 새끼들 다 키워놓으니 딴 사람이 되었다고 할 정도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10년 동안 추석 명절, 설 명절에도 찾아오는 법이 없고 전화 한 통화 없다는 것이었다.

그 흔한 안부 전화 한 번 하는 법이 없고, 찾아뵙는 일 없으니 할머니는 얼마나 혈육의 정이 그립고 외로웠으며 원망과 배신감에 마음이 아팠으랴!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차거운 쇠뭉치 기계가슴이 아니었다면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그렇게 가엽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해도 해도 너무한 자식들이었다.

제아무리 기계화로 편리하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지만 변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데 이집 자식들은 그런 것을 모르고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 따뜻한 사람 가슴이, 가슴 없는 차가운 기계기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산업화시대가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따뜻한 피 한 방울 없는 냉혈 봉물이나 강장 동물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할머니 얘기에 마음이 끓어올라서인지 불현 듯 박효관님의 시조 한 수가 떠올랐다.

뉘라서 가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누가 까마귀를 검고 흉하다 했던가? 반포보은(反哺報恩) 그것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까마귀만도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효도 못하는 사람을 한탄한 글 )

※ 반포보은(反哺報恩) : 까마귀 새끼가 다 자란 뒤에는 자신의 어렸던 시절을 생각해서 늙은 어미를 둥지에 앉혀 놓고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함을 뜻함. 까마귀를 효도하는 새라고 해서 효조(孝鳥),자조(慈鳥),반포조(反哺鳥)라고도 함.



카톡방 떠난 아들 때문에 눈물 글썽이던 호석이 엄마 얼굴이, 자식들의 따뜻한 가슴이 그리워서 몸부림치던 애처로운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텅 빈 둥지를 지키는 엄마 마음을 누가 아프게, 또 아리게 하였던가!

부모는 자식들에게 큰 거 바라지 않는다. 큰 영화나 호강을 바라지도 않는다.

관심 조금 가져드리고 전화라도 자주 드리면 되는 것이다.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게만 해 드리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효자도 많은데 어떤 자식들은 효라는 냄새도 피우지 못하는 것일까!

빈 둥지를 지키며 한숨 쉬며 사는 부모들의 모습이, 우리 자식들의 눈에 미래 자신들의 자화상으로 보일 수 있게 하소서.

귀한 자식들의 영혼이 맑은 눈을 뜰 수 있게 하여 효에 눈먼 장님이 되지 않게 하소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부메랑의 원리가 무서운 것임을 우리 핏줄 모두에게 일깨워 주소서

엄마 마음의 빈 둥지

냉혈가슴의 새끼들은 용광로 불이라도 지펴 따뜻한 가슴으로 엄마 마음의 빈 둥지를 덥히게 하소서.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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