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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환멸과 무기력의 날들이 매듭 없이 이어졌다." - 「서울-북미 간」에서
'화염과도 같은 재난의 날들'을 보내던 남자는 한국을 떠난다. 래프팅 사고로 딸이 죽고, 아내와 이혼한 뒤 트라우마로 제대로 일조차 할 수 없던 때다.
소설 속 남자는 2015년 1월 한국을 떠났던 작가 윤대녕과 닮았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는 '작가인 나의 죽음'을 경험했고,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는 고백처럼, 소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작가에게 일어난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서울-북미 간」 속 남자는 캐나다로 떠나 온라인으로만 연락을 주고 받던 사람을 만난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남편을 잃고 아파하다 한국을 떠난 여자다. 소설은 그렇게 래프팅 사고로 죽은 딸과 여객선 침몰로 죽음을 당한 이들, 건물 붕괴로 사망한 사람들을 연결한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방치하느냐는 분노, 이 나라는 이래저래 사람이 많이 죽는 나라니 떠나는 게 좋겠다는 체념같은 위로가 소설 속 인물들에게 전달된다. 독자들도 뉴스를 보며 무수히 느꼈을 감정이다. 소설 속 여행은 평론가 김형중의 해설대로 "죽은 자의 흔적을 좇는 여행, 죽고자 떠나는 여행,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부터 기원한 여행"으로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을 싸고돈다."
소설집에는 2015년 여름에 『문학과사회』에 발표한 「서울-북미 간」을 시작으로, 역시 『문학과사회』 2018년 가을호에 발표한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까지 3년여 동안 쓴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다. 폭력과 억압으로 가족에게 군림하는 늙은 국가주의자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드러내놓고 표출하고, 가부장적인 폭력과 거기에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동료애적 연대를 그려 보이는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은 황폐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윤대녕이 '작가인 나의 죽음'을 경험하고도 다시 한 줄 한 줄 글을 써내려간 것처럼, 이방에서 헤매던 인물들은 다시 삶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폐허와 폐허가 맞닿은 곳의 여정을 담은 페이지 사이, 생의 의미가 다시 자라는 책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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