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이지만 출신 국가에 따라 저마다 특이한 발음이나 어조, 변용된 언어 사용 등으로 인해 ‘콩글리쉬, 칭글리쉬, 싱글리쉬에 이어 징글리쉬, 핑글리쉬’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갖가지 말로 떠들썩하고 때로 즐거운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한다. 물론 영어권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사람들이야 유창하게 잘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듣느라 꽤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올해 개회식의 사회자도 큰 무대라 흥분했는지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떠들썩한 싱글리쉬가 만만치 않았다. 필자와는 논문발표의 좌장까지 함께하면서 역시나 시끌벅적 거슬리기도 했지만 젊은 교수의 열의로 이해하고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폐회식에서 듣게 된 조용한 반성은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요점인즉 첫날 자신이 너무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말과 어조에 진정성이 느껴지기에 끄덕여주고 격려해주고 덕분에 유쾌한 분위기였다고 체면을 살려주었다.
그렇다. 반성(反省)은 자기에게 어떤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행위나 잘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똑같은 일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말한다. 반성은 벌어진 잘못의 이유를 외부로 돌리는 변명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정당화도 아니다.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야말로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반성은 인간이 성장하는 변화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밤 비행기로 돌아와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니 TV 속에서 또 다른 반성이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에 나오는 아내의 반성문이었다. 강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의 가치관도 제대로 나누어보지 않은 채 결혼한 점,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교육방침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는 고통을 방관한 점, 인간이 바뀌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내 바라고 기대한 점에 대한 반성이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전후좌우로 미루어보아 남편이 반성할 바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여하간 아내가 자기반성을 통해 더 넓게 열린 세상으로 훌쩍 건너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내는 결혼이 자기 장래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회피이었음을 반성하고, 고통받는 자녀들을 보호하려는 용기가 없었음을 반성하고, 남편이 바뀌기를 바라는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한 고집스러움을 반성하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드라마 곳곳에서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연관된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돌이켜보고 있었다. 성공에 눈이 멀어 딸을 죽게 한 자책감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는 중년의 혼란스러움, 외적인 그럴듯함에 이끌려 아내도 잃고 아들을 고생하게 한 아버지의 슬픔, 자기 때문에 죄 없는 아들이 당한다고 분노하고 부모, 엄마에게 못되게 굴어 벌 받는다고 우는 아들, 욕망과 도리 앞에서 갈등하는 친구 등등. 이들의 반성이 진솔하다면, 그리고 행동의 실천이 따를 수 있다면 이후 삶은 스스로에게 훨씬 더 당당하고 나아질 것이다.
자, 이 기회에 우리 한번 반성해보자.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부족한 점에 대해 용기를 내어 잘 들여다보자.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잘못과 관련해 피하지 말고 나를 한번 성찰해보자. 미완의 인간이 수시로 반성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이야말로 더 없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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