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어문연구회 학술지 제9권 실린 김형기 선생의 모습. 당시 선생의 고희를 기념 논총이 발간됐다. 사진=충남대 어문연구회 제공 |
충남대 송백헌 국어국문과 명예교수는 “충남대 문리대학장을 지낸 김형기 선생이 조선어학회 최연소 표준어 사정위원으로 활동했다”고 전해왔다.
김형기 선생은 뿌리부터 충청인이다. 1906년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에서 태어났고, 광복 이후에는 충청권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자로 평생을 살았다.
국어말살 정책으로 어지럽던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조선어학회 전신인 조선어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조선어표준어 사정위원으로 활약했는데 당시 선생의 나이는 28세로, 최연소 사정위원으로 기록돼 있다. 표준어 사정위원들은 1939년 조선어표준말모음 간행을 통해 조선말 큰사전과 함께 한글 지키기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 당시의 만들어진 조선어표준말모음은 대전문학관에 기증·전시돼 있다.
송백헌 교수는 “김형기 선생은 그 당시 일본의 창씨 개명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자녀들의 이름을 외자로 바꾸며 일제에 항거했다”고 강직한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형기 선생은 광복 이후 줄곧 충청권의 학자로 여생을 살았다. 대전중, 서산중, 대전사범학교, 강경상업중을 거쳐 1954년부터 정년 퇴임하던 1971년까지는 충남대에서 도서관장과 문리과대학장을 역임했다.
1962년 11월에는 ‘어문연구회’를 설립해 초대부터 4대까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어문연구회는 국어국문학의 모든 분야를 연구해 향토문화의 고유성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까지도 지속 발행되고 있다.
김형기 교수의 제자인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는 “김형기 선생은 청년 시절에는 중앙에서, 후기에는 대전에서 활동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선어학회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고 회상했다.
송백헌 교수는 “우리 지역에서는 아마도 유일하게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인물”이라며 재조명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
한편 김형기 선생은 대전시가 제공하는 대전의 인물에도 올라와 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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