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날이었다. 친구가 키득거리며 핸드폰을 건넸다. 핸드폰 속엔 멈춰있는 동영상이 떠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퍼졌다. 어둡지만 간간히 색색깔의 빛이 비치는 게 노래방이었다. 순간 소란한 틈으로 "하지 마"라는 울음 섞인 말이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보였다. 누군지 알았다. 난 놀란 눈으로 친구를 바라봤고 친구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불안함 속에서도 궁금하다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무용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전세가 기울던 전장의 장군이 어떻게 승리를 쟁취했는지 설명하듯, 친구는 들뜬 얼굴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어떻게 영상 속 친구를 불러내고 어떤 식으로 그 친구를 괴롭혔는지. 그때의 표정, 대사 하나하나까지.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난 "이래도 돼?"라는 한 마디와 함께 웃어넘겼다. 비록 어색했지만.
명확했다. 친구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다. 친구의 행동이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난 그 판단을 은근하게 친구에게 넘겼다. 꼭 나와는 별개의 일처럼.
하지만 별개의 일이 아니었다. 난 학교폭력의 방관자였다. 친구의 행동과 더불어 그에 대한 나의 행동도 옳지 않았다. 영상을 보고 내막을 알게 된 이상 모른척해서는 안 됐다.
그 후 친구는 더 이상 그러한 영상을 보여주지도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피해자 친구를 마주할 때마다 난 마음이 불편했지만, 친구가 폭력을 그만뒀을 것이라고 믿으며 외면했다. 난 불편함 앞에 눈을 감았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피해자 친구의 근황을 봤다. 핸드폰 속으로 보이는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맛있는 음식 사진을 올리고 좋은 곳에서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게 친구는 내게 안도를 선물했다. 타임라인에 떠 있는 사진 몇 장이었지만 아주 조금, 불편함이 해소됐다.
그래도 난 어색하게 웃어넘겼던 그때를 후회한다. 그 후회를 이렇게 해소 시킬 수 있는 것에 그저 감사하다. 하지만 그건 내게 따른 행운일 뿐이다. "그때를 후회해"라는 푸념으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 올 수 있다. 후회해도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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