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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꽃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백일홍은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롱나무라고도 한다. 초여름부터 여름이 끝나가는 한 계절을 온전히 붉게 물들인다. 사찰에 가면 꼭 이 꽃나무가 있어 불교와 관련있는지 궁금했다. 이 시를 읽으며 오랜 시간 폭풍과 무더위와 바람을 이겨내는 꽃이어서 불교 수행자의 고행과 같아서 절간 뜰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세상은 고난없이 존재하는 건 없다. 호수 위에 동동 떠다니는 오리를 보라. 물 밑에선 쉬지않고 발을 움직이지 않나. 물위에 우아하게 떠 있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를 써야 한다. 백일홍이 질 무렵 우리는 한차례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상처 없는 인간은 삶을 긍정하지 못한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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