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생애를 관통하는 대표작을 통해 그의 예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상대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응노는 한국 전통미술 바탕 위에 서구 추상양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모더니스트다.
먹과 종이, 전각, 동양적 추상패턴이라 할 수 있는 한자(漢字)를 가지고 추상화했다는 점에서 1950년대에 파리로 건너간 다른 화가들과도 차별성을 보여준다.
이번 소장품 전은 군상 작품을 통해 군상 연작의 양식적 근원이 서체에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림 속 사람 형태는 글씨를 쓰는 붓놀림에서 파생된 이미지로 단순히 군상이 정치·사회적 의미를 넘어 서체추상 양식의 완성, 절정에 오른 서체적 붓놀림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꾸준히 제작된 프린트는 마치 낙관, 전각의 기술을 연상시킨다. 이응노의 문자는 추상을 따르고 있지만, 한국의 인장 전통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서체와 같은 서체를 문양처럼 활용한 추상, 세밀한 필선을 장식적으로 구사한 문양 등은 작가의 문자추상이 전통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추측 케 한다.
이응노의 군상은 1989년 작고하기 전까지 집중적으로 다뤘던 소재다. 처음에는 군무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1980년대에 들어가면서 격렬한 집단적 힘의 분출로서 수백 명 혹은 수 천 명의 군중들이 빽빽하게 보여 있는 화면이 등장한다.
마치 노도와 같은 군중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한사람 한 사람의 동작이 모두 다른 형국을 하고 있다. 움직임의 방향도 제각각이어서 화면 전체가 웅성이며 술렁이는 듯이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한 획으로 그려진 인간 형상이 초서체에서 파생돼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면상에 나타나는 움직임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환희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하고, 분노와 저항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특정한 사건과 관련된 뚜렷한 목적의식을 표현하는 것이기보다 생동하는 인간사의 한 국면을 보편성을 담아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응노 미술관은 “이응노는 단순히 서양미술을 모방한 사람이 아니라 서양미술의 중심부로 건너가 동양 미술을 가르치며 서양의 것을 쇄신하려 한 대담한 실험가였다”며 “전시에 소개된 걸작을 통해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 그가 남긴 소중한 유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전시 의미를 설명했다.
특별전은 18일부터 3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이해미 기자 ham7239@
군상, 1982, 185x522cm, 종이에 먹, 이응노미술관 소장 |
구성, 1978, oval 9 x 7.5cm, 목판화, 이응노미술관 소장 |
구성, 1980, 36 x 23cm, 목판화, 이응노미술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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