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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취하러 서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대전을 향해 달리는 기차는 아직 태우지 못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휴가를 나온 멀끔한 군인 한 명이 내 옆으로 와 착석했다. 군용 더블 백을 짐칸에 실으며 정리를 하던 그는 곧 다시 앉아 무언가를 적는 듯 했다. 얼마인지 모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들어보니 대학 동기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영락없는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오래 전에 보았던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강원도 모 부대 지역에서 군인 2명이 고등학생에게 무차별적으로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이었다. 군 규정상 군인은 민간인을 폭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꼼짝없이 맞고 있어야만 했다. 2개 사단장들은 사건을 보고받은 후 예하 부대들에 전 장병, 부사관, 장교 등에 휴가, 외박, 외출 통제를 시행한다는 공문을 내린다. 공문이 시행되자 모든 부대에서는 군 차량을 차출하여 장병들을 부대 안팎으로 이동하게끔 하였고 군인들이 주 고객이었던 지역 상권은 마비된다. 결국 경찰서장, 군 의원, 군수, 상인연합회 등이 군인들을 구타한 고등학생들을 직접 잡아냈고 피해자들을 찾아가 사과하며 재발 방지와 일명 '군인 프리미엄' 철폐 등을 약속한다. 마침내 군은 공문 내용을 철회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분노케 하는 점은 당시 '군인 프리미엄'을 적용한 지역의 주말 물가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PC방 가격이 2000원, 숙박비도 평일보다 최대 3~4배까지 뛰었으며 심지어 식당에서는 민간인용, 군인용 메뉴판을 따로 만들어 장사할 정도였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군은 아무런 대가없이 대민지원, 재해복구 등 노동력을 꾸준히 제공해왔는데 허탈한 것은 주민들이 약속한 일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군인 프리미엄'이 서서히 돌아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국방을 수호하는 가장 큰 구성원은 의무 복무를 하는 병사들이다. 대부분 20대 초반인 그들은 온갖 차별과 불합리함을 겪으며 묵묵히 2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다. 아니, 무사히 마치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집단 폭행으로 사망하거나 지뢰에 신체 일부를 잃는 등 사건·사고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렇다고 국가에게 존중을 바라긴 힘들다. 그들은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당신의 아들'을 매우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군인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 또는 연인이나 형, 동생, 오빠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던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더 이상 그들에 대한 비상식적인 대우가 반복 되선 안 될 것이다.
최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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