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작된 소문은 선배들의 도너츠 구매를 멈추게 했다. 노인이 오후 6시쯤이면 아들이 몰고 온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걸 보니 부자인 것 같더라, 괜히 학과실에 와서 불쌍한 척 하는데 우리가 속았다, 앞으로는 도너츠를 사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노인은 학과실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서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기초수급을 받는 것은 좋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좋은 집에서 먹어야 할 일이냐. (…) 내 세금으로 낸 돈이 그냥 분식집에서 먹어도 똑같이 배부를 일을 굳이 좋은 곳에서 기분 내며 먹는 행위에 들어가야 하느냐."
지난해 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의 일부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유명 돈가스 체인에서 식사를 하는 게 불쾌하다며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사회복지사에게 들었다는 이야기와 자신이 직접 교육봉사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그 글에는 틴트가 갖고 싶었지만 "너 틴트 살 돈은 있나보다?"라는 선생님 말에 눈치 보였다는 학생, 자주 가던 밥집 아주머니가 소풍날 특별히 싸준 도시락을 들고 갔더니 다른 학부모에게 "보통 애들보다 더 잘 먹고 다니네?"라는 말을 들었다는 학생의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삶에 대해 머릿속으로 쉽게 그림을 그린다. 누구나 다 구입하는 물건을 갖고 있을 뿐인데 '가난하다면서 남들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염치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대학교의 노인은 아들이 태워주는 차로 출퇴근하며 장사했을 뿐인데 가난한 척 속이고 다닌다는 수군거림을 들었다. 학생들은 고마운 사람에게 음식과 선물을 받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비아냥거림을 당했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이 굶주리고 꾸미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물질만능주의와도 이어진다. 나보다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해 보이면 안 된다, 나보다 약하고 부족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남의 삶을 재단하는 편견의 폭력이다.
타인의 삶이 내 편견의 그림에 들어맞아야 옳다면 그 풍경을 바꾸면 어떨까. 위에 언급한 돈가스는 돈가스 체인점의 사장님이 아이들을 불러 무료로 먹게 해준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간 세금도 아니었다. 모두가 가슴 속에 가지고 있을 선의였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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