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성인이 된 딸아이와 함께 곱창 집에서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이다가 느닷없이 남편이 쏘아붙인다. 깔끔한 남편은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늘 불만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꼭 해야만 했냐!
기분이 확 상했다. 지금 이 자리는 곧 대학생활을 하게 되는 딸이 친구들과 술을 먹기 전에 부모와 함께 먹어보는 시간이었다. 딸의 주량과 술을 먹었을 때 나오는 행동 즉, 주사(酒邪)를 알아보고 부모로서 조언을 해주는 시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안 해도 치워주는 내가 있으니까 안 하는 거지?"
남편은 내가 안 해도 치워주는 자기가 있어서 내가 정리를 스스로 안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잘 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나는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여건 상 잘 안 되는 상황을 변명 겸 설명을 하려고 했다.
"아니, 넌 안 하는 거야. 왜냐하면 결국 다 해주는 내가 있기 때문이지."
남편은 계속 그렇게 단정을 지어버렸다. 그렇게 되니 더 이상 입이 다물어져서 말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그 자리는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못난 내가 남편의 충고에 삐져버린 못난 여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늘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우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남이 해주는 말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고 나에게 해주는 하늘의 소리라고 여기고 늘 받아드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가 나에게 아무리 모진 소리를 해도 밉지 않다고…….
하지만 오늘 난 내게 모질게 충고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때 나는 남편을 통해 나에게 온 충고의 소리를 받아드리지 못한 것이다.
"화를 안 내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도를 깨쳐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라고 해도 화는 납니다. 다만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오느냐죠"
법정스님의 말씀이었다.
남편이 담배 얘기만 하면 화를 냈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지금 남편은 금연을 하기 위해 무지 애를 쓰고 있다. 이제 나도 남편을 통해 나에게 온 충고의 메시지를 잘 받아드려 새해에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의 마음을 가지고 나를 더욱 낮추고 겸손해하며 남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럼 집안 정리도 더 잘하겠지.
김소영(태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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