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에 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만 환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 …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었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종족이라 자부하던 그들 딩카족에게 있어 눈물은 가장 큰 수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은 하지만 결국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그는 바로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故) 이태석 신부였다.
톤즈에서 의사였고, 선생님이자 지휘자, 건축가이기도 했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남 수단은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나라이다.
정식 명칭은 남수단공화국(The Republic of South Sudan)이며 수도는 주바(Juba)이다.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내륙국으로 수단의 남쪽, 우간다·케냐·콩고의 북쪽, 에티오피아의 서쪽,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1899년 영국-이집트 공동통치가 시작되면서 행정적으로 수단을 북부와 남부로 분리한 후부터 현대의 남 수단이 등장하였다. 1956년 수단이 독립한 후에도 북부와 남부는 종교·인종·문화 갈등으로 두 차례에 걸친 내전(1955~1972년, 1983~2005년)을 치렀다.
2011년 7월 9일 수단에서 분리되어 독립국가가 되었고, 193번째 유엔 회원국으로 등록되었다. 행정구역은 10개의 주(州)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18년 12월 22일자 C일보에는 <쫄리 신부 약통 들고 다니던 아이 "내 꿈은 제2의 이태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를 살펴보면 이태석 신부의 권유로 한국행 9년 만에 국적이 남 수단인 청년 토마스 타반 아콧(33)씨가 2019년도 우리나라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의사자격 취득이 화제가 된 것은, 지난 2001년 당시 서른아홉 살이었던 이태석 신부가 흙먼지 날리는 아프리카 남 수단 시골 마을 톤즈에서 외진 집을 돌며 주사를 놓을 때부터로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약통을 들고 이태석 신부의 뒤를 따라다니며 붕대를 감아주는 등의 보조 역할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랬던 소년이 어느새 성큼 자라서, 더욱이 자국(自國)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의사 면허를 땄으니 어찌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이 같은 경우는 분명 고인이 된 이태석 신부님 역시도 "가히 청출어람(靑出於藍)이로다!"며 감탄하셨으리라 믿는다. 모두들 아는 상식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려면 대입수능에서부터 최고의 성적이 아니고선 어림도 없다.
아무튼 아콧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온 지 9년 만에 이태석 신부의 '후배'가 된 것에 감격하며 "앞으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엔 외과 전문의가 돼서 고향으로 돌아가 신부님의 사랑을 갚겠다"고 해서 더욱 뭉클했다.
아콧 씨의 나라인 수단은 '다르푸르 내전(Darfur conflict)'으로 20여 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250여 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또한 남·북으로 분리된 아픔을 보자면 마치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짠하다.
"귤 껍질 한 조각만 먹어도 동정호를 잊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비록 귤 껍질만한 작은 은혜를 입었어도 동정호 같은 크나큰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초한지(楚漢誌)에 등장하는 한(韓) 나라 개국의 일등공신 한신(韓信)의 '일반천금(一飯千金)'에 비유될 만 하다.
참고로 동정호(洞庭湖)는 중국 후난성(湖南省) 북부에 있는 중국 제2의 담수호를 말한다. 이태석 신부님의 뜻에 따라 인제대학교와 사단법인 수단어린이장학회가 아콧 씨의 학비를 줄곧 댔다는 것 또한 칭찬 받아 마땅하다.
앞으로 의사가 되어 고국으로 귀국할 아콧 씨는 분명 이태석 신부님에 버금가는 '대한민국 일등 외교관'이 될 가능성까지 농후하여 흐뭇했다. 아콧 씨의 금의환향(錦衣還鄕) 영예에 톤즈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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