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열망과 불만과 감정의 도가니 속 '순례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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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열망과 불만과 감정의 도가니 속 '순례자 매'

글렌웨이 웨스콧 지음 |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승인 2019-01-10 10:20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순례자 매
 민음사 제공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는 열정, 상황이나 실수 때문에 산산조각 나는 사랑, 사랑을 가장한 성욕은 모두 진정한 사랑이라는 먼 길, 특히 결혼에 비하자면 사소한 결과이자 자발적이고 일시적 불안에 불과했다. 결혼 생활에서는 모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고통을 견뎌야 할 뿐만 아니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하는 놀라운 양의 용서가 필요하다. 사랑에 만족이 주어지면 남은 삶의 큰 부분은 그 만족을 위한 지불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분할식 지불.' -본문에서



지난 세기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술렁이던 1920년대 프랑스. 『순례자 매』의 화자 알윈 타워는 전원 마을 샹셀레에 자리한, 절친한 친구이자 미국 출신의 부호 알렉산드라 헨리의 저택에 머물며 하루를 보낸다. 지루할 정도로 고요한 이곳에 세계 전역을 여행하는 지방 귀족이자 유산 계급의 컬렌 부부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한 마리의 매 루시가 있다.



소설은 반나절이라는 제한된 시공간과 극히 적은 수의 등장인물로 마치 연극처럼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아름답고 나른한 풍광을 배경으로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는 밑도 끝도 없는 열망과 치명적인 불만,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감정의 도가니가 칼에 베인 상처처럼 움푹 입을 벌린다. 소설은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순례자 매' 루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성과 욕망, 좌절과 적응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호수의 잔잔한 수면처럼 일견 적요(寂寥)해 보이는 상황 아래, 각기 다른 정념을 지닌 인물들의 드라마가 들끓는다.

『순례자 매』의 서문을 쓴 소설가 마이클 커닝햄의 평가처럼 웨스콧의 문체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경이로운 표현이나 통찰이 관찰"된다. 마치 진부한 표현에 저항하듯 문장은 저마다 극도로 정렬돼 있고, 눈부실 정도로 풍부한 이야기와 묘사 속에서도 주제 의식을 잃지 않는다. "20세기 미국 문학 중에서 가장 놀라운 작품"이라는 수전 손택의 말도 소설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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