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이사장 |
모든 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흥하기도 쇠하기도 한다. 옛스러움에 현대적 쓰임새를 더한 도시는 날로 번창하지만, 낡은 건물의 불편함만 남은 도시는 사람이 떠나고 시들어 간다. 그러면 1905년 경부선 역이 들어서며 번성해 왔던 대전은 어떠한가?
대전시 인구는 1970~80년대 대덕연구단지 구축에 따른 정부출연연구소, KAIST 등의 입주와 1993년 EXPO 개최, 1997년 정부대전청사 설립 등을 거치며 2010년대 초반까지 지속해서 증가해왔다. 이 기간에 대전시의 인구는 전국 광역시 중에서 가장 빠르게 늘었으나,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며 감소하고 있다.
그러면 공공 자원의 추가 투입 없이도 도시가 지속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전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교통의 중심, 정부청사의 입지, 우수한 과학 인프라 등을 잘 살려야 할 텐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고속도로와 고속철의 발달로 구태여 대전에 머무르지 않아도 도시 간에 바로 연결되는 요즈음 교통중심지라는 명성은 이제 허울만 남아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들이 생기며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추가 이주도 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면 과학도시 대전은 어떠한가? 대덕특구가 아무리 우수한 연구 성과를 많이 내도 지역에서 쓰이지 않으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런 것 같아 안타깝다. 이는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연구 결과가 기업으로 흘러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은 잘 연결된 생태계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연구단지는 바로 이웃 연구소를 가려 해도 차를 타야 할 만큼 단절돼있다. 같은 연구회 소속 연구소라도 출입증을 받아야 방문할 수 있으니, 융합연구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 구상 당시 연구소들은 각자 알아서 선진국을 따라잡을 기술을 빨리빨리 개발하면 됐기 때문에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건물 외곽에 숲을 조성하고 담장을 세워 주변의 접근을 막아줬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얼마 안 남은 공간을 비집고 후발 연구소들이 추가로 입주하고 빈 땅이 사라지자 대덕단지는 사람의 왕래가 뜸한 주변과 단절된 섬이 됐다.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모여들기는커녕 지역에서 배출한 인재마저 떠나는 재미없고 밋밋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대전시가 다시 흥하려면 성장의 원천인 대덕특구에서 먼저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파괴적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처절하게 변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혁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공간을 창의적으로 재창조하는 일이다.
대전시와 특구진흥재단은 4년 후 맞게 될 대덕연구단지 출범 50주년을 대비해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플랜' 수립 TFT를 운영해 왔는데, 다행히 올해 예산으로 관련 용역비 10억원을 확보했다. 이 플랜에는 대덕특구 미래 50년의 비전과 함께 공간 재창조 구상,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방안 등 실행계획을 담을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웃한 몇 개의 공공기관끼리 컨퍼런스룸과 체육시설, 편의시설, 유아원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담장을 헐어 생기는 여유 공간에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 기술사업화 공동시설, 기업지원 인프라, 창업 및 입주 공간 등을 구축해 혁신 생태계가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각 기관이 보유한 산책로와 녹지, 둘레길을 연결해 사람들이 즐겨 찾도록 개방했으면 좋겠다. 기관마다 도로변 공간을 2m씩 내어 연결하고, 사람들이 모이거나 쉬어갈 수 있게 쉼터를 만들면 어떨까.
탄동천에 철마다 다른 꽃이 필 수 있게 나무를 심고 천변을 따라 생태 축을 복원하자. 걷다가 지치면 순환 버스를 타고, 해외 바이어가 대전역에서 BRT를 타고 바로 올 수 있도록 교통 인프라를 확충해준다면 대덕에서 자연스레 세계 최고의 제품이 개발되고, 대전은 또다시 성장할 것이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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