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무슨 일이야?
대화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는 계속되고 기분은 낯설면서도 편안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희미한 기억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대로 바닥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지난 시간 속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흐리고 빛이 바랬지만 떠올리고 싶어 아주 깊은 곳으로 내려가 나를 꺼낸다. 사진에 남겨진 모습이나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나, 아니면 내 기억 속에서도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찬찬히 돌아본다.
중학교 2학년 수련회 때 강단에 서서 소감문을 발표하며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나, 미술 수업 준비물이 동이 나서 사지 못하고 발만 구르던 나, 기숙사에 살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나, 친구들과 먹던 치킨과 맥주 몇 잔에 즐거워하던 나.
시간마다 아주 다른 내가 여러 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어떤 날에는 작은 일에도 화가 끝까지 치솟다가, 또 어떤 날은 크고 심각한 일에도 끄떡없는 대범한 사람이다.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고 뛰던 날이 있던가 하면, 어디가 바닥인지도 모르고 추락하던 날도 있다. 어느 시절에는 공부를 잘해서 인정을 받기도 했던 반면 어느 시절은 대책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모습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밝고 명랑한 사람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웃음기 하나 없는 우울한 사람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나도 변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랬다저랬다 한다. 잠깐의 순간에도 감정이 널뛰고 마음이 아예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니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나는 수없이 바뀐 모습을 하고 있다.
어쩌다 실수하거나 부족했던 나날을 떠올리며 한없이 작아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여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초라해도 이게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덕분이다. 언젠가 나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누구보다 멋진 나날을 보낼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살아가면서 나는 몇 개의 모습을 하게 될까. 몇 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또 오늘은 어떤 모습의 나를 만나볼까. 전유진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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