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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멀리 서울 근처 어느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일찍 결혼했다. 몇 년간 신혼 기분 내다가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갑자기 정신없이 육아에 시달리느라 약간의 산후우울증이 와서 만사가 재미없어 했다. 이틀 친정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대전으로 바람쐬러 온 것이었다.
나와 다른 친구는 직장생활에 바빴고, 하여튼 우리 셋은 일탈을 감행했다. 먹고 마시고….
노래방에서 나와 단란주점으로 갔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재밌고 신기했다. 유부녀 친구는 작정한 듯 무대로 올라가 끼를 발산했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심수봉인가 김수희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러제꼈다. "와, 쟤가 언제 저렇게 노랠 잘 불렀지?" 우리는 감탄을 하며 재밌어 죽을 지경이었다.
친구가 내려오고 조금 있다 육중한 중년의 남자가 올라갔다. 허리가 드럼통 같았다. 유난히 배가 불룩 나와서 벨트로는 안되니까 멜빵을 맨 모양이다. 몸은 뚱보였지만 멋을 한껏 부린 것이 나름 멋쟁이처럼 보였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아마 향수도 뿌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노래를 기가막히게 불렀다.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노래와 잘 어울렸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남진의 '빈잔'이었다. 테이블의 사람들이 다 그 중년의 사내 노래에 집중했다. 꽤 노래를 불러본 솜씨였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달콤한 노래와 한 잔 마신 맥주에 취해 우리는 얼굴이 벌개져서 깔깔대기만 했다. 저물어가는 청춘이 못내 아쉬웠다. 늦게까지 거리를 취한 듯 배회하다 친구 집에 가서 쓰러져 잤다. 다음날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날 옷을 그대로 입고 출근하고 허가받고 가출한 친구는 서울로 갔다. 가끔 '빈잔'을 들으면 그 시절이 생각나 그리워진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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