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남진의 '빈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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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남진의 '빈잔'

  • 승인 2019-01-02 14:5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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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제공
남진의 '빈잔'을 그 곳에서 들었을 때 '저게 무슨 노래지? 누가 부른 노래더라?' 갸우뚱했다. '빈잔'을 제대로 기억하는 장소는 단란주점이었다. 친구들과 처음 가본 곳. 20 후반이었다. 우리는 퇴근하고 유성 궁동으로 갔다. 노래방에 들러 신나게 시끌벅적 목이 아프도록 불렀다. 30을 바라보는 나이였으나 촌것들이 도시에 올라온 것처럼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한없이 순진했던 시절이었다.

한 친구는 멀리 서울 근처 어느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일찍 결혼했다. 몇 년간 신혼 기분 내다가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갑자기 정신없이 육아에 시달리느라 약간의 산후우울증이 와서 만사가 재미없어 했다. 이틀 친정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대전으로 바람쐬러 온 것이었다.

나와 다른 친구는 직장생활에 바빴고, 하여튼 우리 셋은 일탈을 감행했다. 먹고 마시고….



노래방에서 나와 단란주점으로 갔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재밌고 신기했다. 유부녀 친구는 작정한 듯 무대로 올라가 끼를 발산했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심수봉인가 김수희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러제꼈다. "와, 쟤가 언제 저렇게 노랠 잘 불렀지?" 우리는 감탄을 하며 재밌어 죽을 지경이었다.

친구가 내려오고 조금 있다 육중한 중년의 남자가 올라갔다. 허리가 드럼통 같았다. 유난히 배가 불룩 나와서 벨트로는 안되니까 멜빵을 맨 모양이다. 몸은 뚱보였지만 멋을 한껏 부린 것이 나름 멋쟁이처럼 보였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아마 향수도 뿌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노래를 기가막히게 불렀다.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노래와 잘 어울렸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남진의 '빈잔'이었다. 테이블의 사람들이 다 그 중년의 사내 노래에 집중했다. 꽤 노래를 불러본 솜씨였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달콤한 노래와 한 잔 마신 맥주에 취해 우리는 얼굴이 벌개져서 깔깔대기만 했다. 저물어가는 청춘이 못내 아쉬웠다. 늦게까지 거리를 취한 듯 배회하다 친구 집에 가서 쓰러져 잤다. 다음날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날 옷을 그대로 입고 출근하고 허가받고 가출한 친구는 서울로 갔다. 가끔 '빈잔'을 들으면 그 시절이 생각나 그리워진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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