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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삼남(三南)은 호남, 영남, 충청을 말한다.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집어 삼킬 야욕을 서슴없이 드러낼 때 조선 군주와 위정자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이완용 일당은 일본의 주구가 되어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빴고 고종황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나라를 지키는 이는 누구인가. 한 나라의 주인은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녹두장군 전봉준과 그를 따르는 민초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정작 나라를 지키는 이들은 무식한 민초들 아닌가. 그들은 누구를 위해 싸울까. 돌멩이와 낫과 삽으로 팔 다리 잘려가며, 피를 토하며 저항하고 저항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과 같은 것.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그들은 결국 스러져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 일제 강점기, 해방 후의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살여탈권이 그들이 쥐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단한 우리의 역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오늘도 삼남에 눈이 내린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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