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부장 |
아끼라고 하는 건지, 아끼지 말라고 하는 건지… 참, 모호한 말이다.
영화, ‘남한산성’에 고립됐던 조선 제16대 왕, 인조(仁祖)의 대사다.
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후금)의 2차 침략으로 발발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길목을 차단한 청나라 군대에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남한산성에서 인조와 대신들은 청나라와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와 싸우자는 척화파로 갈려 첨예하게 갈등한다. 각자 일리 있는 명분을 내세우며 고립됐던 45일 한겨울 내내 뜨겁게 논쟁한다.
조선시대 왕 중 인조가 ‘결정장애의 극치’를 보여준 왕이라는 오명을 쓴 것도 이때다. 이념과 현실 앞에서 심각한 결정장애에 시달렸을 것으로 본다.
결단력이 필요할 때 우유부단함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논쟁의 책임은 모두 신하들에게 떠넘겼다. 우유부단함과 결정장애의 끝은 결국 ‘삼배고구두’(三拜叩九頭: 세 번 절하고, 땅에 아홉 번 머리를 찧는)였다. 역사는 이를 ‘삼전도의 치욕’으로 기록했다.
역사는 인조를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도주하며, 명장과 의병들을 시기 질투한 선조(宣祖)와 동급으로 평가한다. 인조가 겪었을 숱한 고뇌와 고통은 중요치 않다.
‘백성’이었다. ‘국민’, ‘시민’이었다. 조선 시대는 물론이고 이어진 대한제국, 대한민국에서도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빠지지 않는 최대 존엄이었다.
2018년 겨울, 미·중 (무역) 전쟁과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에 맞서고, 국회에서 치열한 정쟁을 벌이며,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주요 정책 결정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도 ‘국민과 시민’은 빠지지 않는다.
당연히 국민과 시민이 빠져선 안 된다. 이제는 가능한 많은 의사를 수렴해 충분히 숙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모든 걸 맡긴다면 실제 이행단계에 들어갈 정책은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 월평공원 갈마지구 민간특례사업을 놓고 공론화위원회가 ‘반대’ 의견과 함께 대안을 허태정 대전시장에 전달했다. 연말 대전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현안이다.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가 내세우는 명분과 현실적인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의견이 다르다고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질 사안은 아니다.
다만, 7000억원이 넘는 사업비가 아쉽다. 사업비뿐 아니라 인근 식당에서부터 건설과 인쇄, 광고, 제조 등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매번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두둑한 지갑은 누군가에겐 ‘행복한 가족’을 선사할 수도 있다.
대전시민의 세금도 아닌 막대한 외부 민간자본이 대전시에 들어온다는데,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발씩 양보하면 충분히 찬반 양측의 주장을 담아낼 수 있을법한데 말이다.
대전시청 안팎에서 허태정 대전시장에게 ‘결정장애’가 있다고들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신중함’에서 비롯된 얘기가 아닐까 한다.
‘결정’은 역사를 뒤흔든다. 신속한 결정이든, 결정장애 끝에 나온 결정이든 마찬가지다. 결정을 ‘좋은’ 결정과 ‘나쁜’ 결정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다만, 허태정 대전시장의 결정이 ‘틀린 방향’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경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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