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있다는 건 뭘까요. 무엇이 가치 있는 걸까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돈, 사회적 지위, 권력이 행복의 조건일까요. 인간은 삶의 대해 재단하는 몹쓸 버릇이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과 결과는 수지타산에 맞춰 쓸모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가치있는 인간이냐는 거지요. 우리는 어느새 노동의 피로에 젖어드는 거에 익숙합니다. 그나마 일할 곳이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현실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삶에 대한 공포는 글 한 줄 읽는 마음의 여유도 빼앗아 갑니다. 일년에 책 한 권 안 읽는다고 탓할 이유가 못 됩니다.
그래도, 책은 읽어야 합니다.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읽는 자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저에게 하루 중 의미있는 시간이 언제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단언컨대, 잠자기 전 잠깐의 책을 펼쳐보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어떻게든 밥벌이의 일상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으려는 순간입니다. 일종의 의식과도 같습니다.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 자 한 자 해독하듯 글자를 더듬어 가는 제 눈과 뇌세포가 촉수처럼 예민해집니다. 비로소 제 존엄성을 찾게 됩니다. 간간이 들리는 바람 소리와 소리없이 내리는 눈의 세계와 합일하는 느낌이랄까요. 외로움은 어쩌면 사람들 속에서 비롯됩니다. 홀로 있다는 건 비참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엇과의 감응입니다. 거기에 책은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얼마나 근사한지요.
제겐 책에 관한 상처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12월에 담임 선생님이 어쩐 일로 자유 시간을 줬습니다. 방학을 앞둔 때라 선생님도 수업하기 싫었나봅니다. 선생님은 난롯가에 앉아 불을 쬐고 아이들은 잡담하거나 공부했습니다. 전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그걸 본 선생님이 책을 빼앗아 난로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쓸데없는 책을 읽는다고요. 제가 읽던 책은 불 속에서 순식간에 타버려 시커먼 재가 됐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피부가 따끔거렸습니다. 그 시대는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공부는 안하고 책만 본다고 말이죠.
일주일에 한번은 꼭 한밭도서관에 갑니다. 한밭도서관은 제 서가인 셈입니다. 빽빽이 꽂힌 책을 보면서 '저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지?' 행복한 고민에 빠집니다. 종종 감동적인 장면도 목격합니다. 한번은 80 중반쯤의 할머니가 읽을 책을 열심히 고르더라고요. 허리가 바짝 굽어 거동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길지 않은 여생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 싶다고 하더군요. 지적인 풍모의 할머니가 어찌나 멋지던지요. 책은 분명 의식의 차원을 높입니다. 부조리하고 부당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길러 줍니다. 물론 어떤 책을 읽느냐 하는 문제가 있긴 하죠. '2018 책의 해'가 저물어 갑니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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