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
프랑스 파리 근교 보쉬르센(Vaux-sur-Seine)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가 어울려 이응노 화백의 문화유산이 숨 쉬고 있는 장소다. 이곳에는 유족 박인경 화백과 이융세 화백이 그림을 그리며 살고 계신 곳이다. 묵직하고 커다란 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3천 평의 대지에 5채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마을이 하나 있는 듯 보인다. 전통 한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이곳을 고암산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암서방이라고도 한다. 예전 고암이 서울에서 가지고 있던 고암서방을 떠오르게 한다.
이 한옥에서 매년 10월경이면 파리이응노레지던스 작가들의 발표 전시가 개최되어, 동네 사람들은 물론 미술계 전문가들이 찾아온다. 또 한편에는 장 미셀 빌모트의 설계로 건축된 현대식 건물이 있다. 고암 아카데미라고 부르며 여기는 고암의 제자들이 박 여사에게 그림을 배우러 주기적으로 수업을 받는 아틀리에다. 파리이응노레지던스의 전시 개막식이 바로 여기서 이루어진다. 주변의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베르니의 '모네의 정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다. 한옥과 서양건축이 나란히 서있는 전경은 동양과 서양의 미가 어울려서 마치 한 폭의 이응노 작품을 보는 듯 아름답다.
파리이응노레지던스는 이응노의 예술 정신을 계승하고자 이응노미술관이 2014년부터 해마다 3명의 입주 작가를 선발해 3개월간 프랑스 보쉬르센에 파견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이응노 화백의 도불(渡佛) 60주년을 기념하여 실험성과 도전정신이 강한 김영진, 김찬송, 박파랑 작가를 선정했으며 이들은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의 일정을 마치고 10월말 귀국했다. 이 작가들은 보쉬르센을 거점으로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태리 등 주변 유럽 국가의 미술계의 주요 동향을 살펴보고, 그곳 전문가들의 작품 모니터링을 받는 등, 새로운 작업을 위한 자극과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돌아왔다.
특히 작가로서 작업에 대한 따뜻한 조언과 따끔한 비평을 진행해 준 파리 조폐박물관(Monnaie de Paris) 전임 수석 큐레이터이자 2018년 멜 비엔날(Biennale Melle)의 디렉터로 활동 중인 프레데릭 르그로(Frederic Legros)와 르 크레닥, 이브리 현대미술 센터(le Credac, Centre d'Art Contemporain d'Ivry)의 장-드니 프라테(Jean-Denis Frater) 대표와의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아울러 대전으로 돌아온 후 3개월의 활동을 담은 결과물을 전시하는 이응노미술관 M2의 보고전은 프로그램을 마감하는 소중한 자리이다.
그동안 파리이응노레지던스가 배출한 12명의 작가들이 국내외의 주요 전시에 참여하면서, 한국과 해외에서의 작품 활동이 예전과 달리 눈에 띄게 활발하다. 그들의 활동 지평이 레지던스 이후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파리이응노레지던스는 국내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하는 유럽 내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문화외교의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 비추어 보면, 파리이응노레지던스는 지자체가 추진하는 공공외교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지난 5년간 성공적으로 지속된 것은 파리이응노레지던스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시는 박인경 명예관장과 이융세 화백이 계시기에 가능했다. 2019년에는 프로그램 내용 심화와 참여 작가들에 대한 지원 확대로 한층 더 전문적인 파리이응노레지던스가 되길 바란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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