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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안장 위의 군주'라는 책의 부제가 달려갈 듯 진취적이면서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한 기운을 풍긴다. 『정조 평전』의 저자 박현모는 리더이자 정치가로서의 정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그를 왕위에 오르고도 평생을 말안장 위에 앉은 듯 긴장 속에서 살았던 왕으로 평한다.
저자에 따르면 정조는 현재 학계에서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등을 등용해 조선의 문예 부흥을 이끈 탁월한 학문 능력을 지닌 지도자, 치적으로 소외되었던 남인 중에서도 인재를 발탁해 중용하는 탕평 군주, 정치적 다수파인 노론의 견제를 받으며 왕위에 올라 규장각과 장용영이라는 문무의 지지세력을 키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 정치가로 분석한다. 여기에 저자는 재위 기간 추진된 개혁 정치의 성취와 사망 이후 전개된 세도정치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 지금의 싱크탱크인 규장각을 설치하고 당파와 신분을 초월해 인재를 등용했으며 신해통공으로 경제 개혁을 이뤘지만, 군사 조직을 개편해 국왕의 재량권을 넓히고 언관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 공론정치를 변질시킨 것도 정조라는 걸 다시 주목하게 한다.
여기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과 의지가 되어주지 못한 할아버지 영조, 가장 의지하는 두 신하 김종수와 채재공의 갈등까지 어느 한 곳도 온전히 믿고 의지할 데 없이 불안하게 살았던 정조의 고뇌도 들여다본다.
책은 크게 아홉 부분으로 구성됐다. 1장은 정조 재위 24년의 주요 사건과 그에 대한 정조의 대응을 개괄하고, 2장에서는 어린 시절 감수성이 풍부했던 정조의 인간적 면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살핀다. 3장은 즉위한 정조가 영조로부터 물려받은 무거운 유산, 즉 사도세자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알아보며 4장은 규장각을 활용하는 정조의 지식 경영 리더십 및 18세기 지식인들의 지식 정보 네트워크에 대해 살핀다. 5장은 정조가 발휘한 대통합의 리더십, 즉 탕평 정치의 본질에 대해 알아본다. 6장에서는 경제 분야의 신해통공 조치와 군사 분야의 장용영 창설 과정 등 정조가 계획하고 추진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에 대해 경장(更張)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며 7장에서는 복합적인 개혁 프로젝트인 수원 화성 건설을 디자인 경영 측면에서 고찰한다. 8장에서는 천주교의 확산과 조정의 대응 방식을 살피며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정조 시대의 대외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당시 북경과 나가사키에 서양의 상인과 선교사들이 줄지어 오가고, 인근 해역에는 수많은 이양선이 출몰했음에도 모두 사대교린의 전통적 대외 정책으로 통제되리라 여겼던, 그 시대의 안이함을 세도정치기의 대외 정책과 연계해 고찰한다. 책 뒷부분에는 재위 1년부터 24년까지, 정조의 행적과 어록이 정리돼 있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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