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휴일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평소와는 달리 그날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밥먹고 커피숍에서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애먼 블랙커피만 마셔댈 뿐, 우리의 대화는 우울감이 깊이 배었다. "사는 거 참 지루하다", "이 나이 먹도록 뭐 했을까", "앞으로도 재미난 일은 없겠지? 빌어먹을", 그 친구도 싱글이라 우리는 죽이 맞아 침 튀기며 공허한 휴일에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정치인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 남자 연예인 걔는 비주얼은 좋은데 머릿속이 백치인 거 같더라, 갱년기에 뭘 먹으면 좋다더라 등등 실컷 얘기를 쏟아내지만 끝에 가선 휴~ 한숨이 레퍼토리였다.
다음날도 전날의 맥 빠지는 기분이 이어졌다. 날씨마저 장단을 맞췄다. 늦가을의 흐린 날처럼 잿빛 구름이 보문산에 그늘을 드리웠다. 세수도 안 하고 봉두난발 머리를 질끈 묶고 소파에 누워 예능프로를 보면서 낄낄거리는데 문자가 왔다. 유명 빵집 케이크 선물이었다. 서울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그 친구는 워낙 바빠 일년에 몇번 만나질 못한다. 연봉이 나보다 몇배라는 이유로 만나면 거의 다 계산하는 친구다. 옷도 많이 사 주고 한여름엔 보양식 쿠폰도 보낸다. 한마디로 물심양면으로 나를 지지한다. 나의 키다리아저씨인 셈이다.
오후 느지감치 시내 제과점으로 갔다. 와아! 제과점에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이 곳에 올때마다 '이 집 사장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돈 다 벌어서 뭐하나'라며 감탄하곤 한다. 하여간 사람도 많고 주문한 케이크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친구가 보낸 건 컵케이크가 아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떡시루만한 티라미수란 말씀이다. 진한 밤색의 초콜릿 파우더가 소복이 덮인 티라미수. 가슴이 두근거리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를 지경이었다. 로또에 당첨돼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 한순간에 기분이 백팔십도 달라지는 지, 나 원 참.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사실 사람은 작은 거에 감동하는 법이다. 시드니 셀던 원작의 영화 '깊은 밤 깊은 곳에'서 여자는 백만장자가 비싼 다이아 반지를 선물하지만 거절한다. 그녀가 원한 건 붉은 장미 한송이였다. 물론 이건 남자를 완벽하게 사로잡기 위한 여자의 전략이지만 말이다.
티라미수를 품에 안고 서둘러 집에 왔다. 종이 상자를 벗겨내고 눈 앞에 오롯이 존재하는 티라미수를 응시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먹나. 이리보고 저리보다가 한 술 크게 떠서 입안에 넣었다. 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단지 고 섬세한 물체가 내 혀를 맘껏 농락하는 걸 즐길 뿐이다. 혀와 치아, 입천장, 목젖을 요리하는 사디스트처럼 분탕질하는 티라미수에 속수무책으로 내 감각의 기관을 맡기고 싶었다. 먹을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부드럽게 혹은 격렬하게 혀를 애무하듯 티라미수는 그렇게 나의 감각의 제국을 지배했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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