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궁극의 달콤함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궁극의 달콤함

  • 승인 2018-12-19 10:59
  • 수정 2018-12-19 14:41
  • 신문게재 2018-12-20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티라미수
한 해가 막 저물 무렵,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이 막바지 뒷심을 발휘한다. 동정녀 마리아의 산고 끝에 말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의 생일은 너나없이 즐거운 날이다. 교회나 성당에 안 다녀도 이 날은 으레 아이가 있는 집이나 연인들은 성탄절을 핑계삼아 외식하는 날 아니겠냐 이 말이다. 나야 뭐 종교적인 인간도 못되고 또 혼자 살아서 별 감흥이 없다. 그나마 일반 직장인이면 빨간 날이라 고마운 마음에, 그날 하루 예수 총각의 탄생을 기꺼이 축하해 주겠지만 그것도 애저녁에 틀려 먹었다. 신문사에 다니는 죄(?)로 출근해서 이마빡에 땀띠 나도록 일해야 한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지만 우리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이 투철한 사명감!

지난해 이맘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휴일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평소와는 달리 그날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밥먹고 커피숍에서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애먼 블랙커피만 마셔댈 뿐, 우리의 대화는 우울감이 깊이 배었다. "사는 거 참 지루하다", "이 나이 먹도록 뭐 했을까", "앞으로도 재미난 일은 없겠지? 빌어먹을", 그 친구도 싱글이라 우리는 죽이 맞아 침 튀기며 공허한 휴일에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정치인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 남자 연예인 걔는 비주얼은 좋은데 머릿속이 백치인 거 같더라, 갱년기에 뭘 먹으면 좋다더라 등등 실컷 얘기를 쏟아내지만 끝에 가선 휴~ 한숨이 레퍼토리였다.

다음날도 전날의 맥 빠지는 기분이 이어졌다. 날씨마저 장단을 맞췄다. 늦가을의 흐린 날처럼 잿빛 구름이 보문산에 그늘을 드리웠다. 세수도 안 하고 봉두난발 머리를 질끈 묶고 소파에 누워 예능프로를 보면서 낄낄거리는데 문자가 왔다. 유명 빵집 케이크 선물이었다. 서울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그 친구는 워낙 바빠 일년에 몇번 만나질 못한다. 연봉이 나보다 몇배라는 이유로 만나면 거의 다 계산하는 친구다. 옷도 많이 사 주고 한여름엔 보양식 쿠폰도 보낸다. 한마디로 물심양면으로 나를 지지한다. 나의 키다리아저씨인 셈이다.

오후 느지감치 시내 제과점으로 갔다. 와아! 제과점에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이 곳에 올때마다 '이 집 사장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돈 다 벌어서 뭐하나'라며 감탄하곤 한다. 하여간 사람도 많고 주문한 케이크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친구가 보낸 건 컵케이크가 아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떡시루만한 티라미수란 말씀이다. 진한 밤색의 초콜릿 파우더가 소복이 덮인 티라미수. 가슴이 두근거리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를 지경이었다. 로또에 당첨돼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 한순간에 기분이 백팔십도 달라지는 지, 나 원 참.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사실 사람은 작은 거에 감동하는 법이다. 시드니 셀던 원작의 영화 '깊은 밤 깊은 곳에'서 여자는 백만장자가 비싼 다이아 반지를 선물하지만 거절한다. 그녀가 원한 건 붉은 장미 한송이였다. 물론 이건 남자를 완벽하게 사로잡기 위한 여자의 전략이지만 말이다.



티라미수를 품에 안고 서둘러 집에 왔다. 종이 상자를 벗겨내고 눈 앞에 오롯이 존재하는 티라미수를 응시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먹나. 이리보고 저리보다가 한 술 크게 떠서 입안에 넣었다. 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단지 고 섬세한 물체가 내 혀를 맘껏 농락하는 걸 즐길 뿐이다. 혀와 치아, 입천장, 목젖을 요리하는 사디스트처럼 분탕질하는 티라미수에 속수무책으로 내 감각의 기관을 맡기고 싶었다. 먹을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부드럽게 혹은 격렬하게 혀를 애무하듯 티라미수는 그렇게 나의 감각의 제국을 지배했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